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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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영혼의 불멸을 가르치는가?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눅 16:22, 23).

이 비유는 영혼불멸을 지지하는 증거 구절로 자주 언급된다.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 곧 낙원에 있고, 부자는 그의 형제들이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데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광경은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성경의 가르침(전 9:5)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누가복음 16장에만 나온다. 그것은 사후의 사건에 대해 말하는 유일한 비유일 뿐 아니라 나사로라는 개인의 이름을 언급한 유일한 비유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누가복음 16장은 대부분 부(富)라는 주제를 다루며, 이 비유도 상당부분 그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유의 배경: 비유의 첫 번째 장면은 어떤 부자와 나사로라는 거지1의 전혀 다른 삶의 입장에 대해 말한다. 거지 나사로가 헌데를 앓으며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고 있는 동안 부자는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반면, 개들이 나사로의 헌데를 핥고 있다.
그러다 거지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 거기서 쉼을 얻으나 부자는 그냥 장사된다. 그런데 장면이 갑자기 바뀌어,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아버지 아브라함”을 부르며 나사로를 보내 물 한 방울만이라도 주어 자신의 타는 목을 축여 달라고 청한다. 이는 매우 하찮은 자비의 요청이다.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이라도 찍어 온몸도 아니고 혀를 적셔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두 가지 이유로 요청을 거절한다. 첫째, 부자는 그의 이생에서 좋은 것들을 다 누렸고, 나사로는 가련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그 역할이 뒤바뀌어 나사로는 위로받고 부자는 고통을 받는다. 둘째, 아브라함은 이 둘 사이에 큰 구렁이 있어 이쪽에서 저쪽으로 아무도 건너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후 부자는 나사로를 돌려보내 자신의 형제들에게 경고하도록 구했다. 다시 아브라함은 거절하면서, 모세와 선지자들의 증거를 언급한다. 그러나 부자는 물러서지 않고, 어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서 기별을 전한다면 그의 형제들이 분명 마음을 돌이켜 음부의 고통을 면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을 듣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난다 해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한다. 이런 대화로 비유는 끝난다. 그렇다면 이것은 모두 무엇을 의미하는가?

재산의 사용에 대한 가르침:이 비유가 재산의 사용에 대한 누가복음 16장의 다른 가르침들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이것도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우리가 이런 가정 하에 비유 전체의 가르침을 보면 여러 가지 점이 분명해 진다. 첫째, 부자와 나사로는 재산과 관련하여 양극단에 있다. 이야기의 첫 부분에서 이 사실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둘째, 비유에서 그들의 양극적인 역할이 내세에서 뒤바뀌어, 다시 천국과 음부라는 양극적인 상황이 생긴다. 부자는 누가복음 16:9∼13에 나오는 가르침을 대표한다. 즉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데 재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영원한 처소에서 참된 부와 거처를 얻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부가 하나님의 은총의 표이고 가난은 그분의 불쾌하심의 표라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부자의 “상급”이 그들이 기대한 것과 정반대였음을 보여 줌으로써 그런 잘못된 신학을 드러낸 것이다.

비유에 나오는 세부사항들은 주의 깊게 해석되어야 한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세 가지 분명한 관점을 보여 준다. (1) 부자는 이생에서 빈자를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2) 성경은 우리를 이끌어 회개케 하고 성경의 윤리를 따르게 하기에 충분한 증거이다. (3) 사후에는 마음의 변화를 위한 기회가 더 이상 없다. 당신은 당신에게 마땅한 상급 혹은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죽음 및 영혼에 관한 질문: 그렇다면 비유는 더 나아가 죽은 자가 의식이 있으며 죽은 후에는 영원한 상급을 받는다고 가르치는가? 몇 가지 측면의 증거가 그런 결론을 뒷받침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1. 복음서의 다른 곳에서 예수께서는 죽음을 깨울 수 있는 잠으로 언급하신다(마 9:24; 막 5:39; 요 11:11, 12; 참조 행 7:60; 13:36; 고전 11:30; 15:6, 18, 20, 51; 살전 4:13∼15; 벧후 3:4). 죽음으로 잠으로 보는 이런 가르침은 다른 복음서나 베드로 및 바울의 서신들뿐 아니라 누가복음 8:52에도 나타난다.
2. 비유에 의하면, 부자는 죽은 후에 “눈”과 “혀” 곧 매우 실제적인 몸의 지체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는 나사로가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주기를 간청했다. 신체를 지니고 있는 이런 상태는 죽음 후에 육체를 떠난 영혼이 불멸한다는 개념에 맞지 않는다.
3. 이 비유가 사후의 삶을 말하는 실제적인 이야기라면, 천국과 지옥은 천국과 지옥의 거주자들 사이에 대화를 주고받을 만큼 매우 가깝게 있다. 이는 이 두 부류의 사람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다.
4. 사람이 죽을 때 상급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비유를 사용하면 그리스도께서 다른 곳에서 재림 때에 의인과 악인이 각기 상급과 보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마 16:27; 25:31∼46; 눅 11:31, 32) 그분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5. 구약의 기자들은 죽은 의인과 죽은 악인이 다 같이 부활의 날까지 무의식 상태로 무덤에 잠잠히 있을 것을 것이라고 매우 강조하여 진술한다(참조 욥 14:12; 시 115:17; 전 9:5, 6, 10).
이런 증거의 국면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단순히 민간에 유행하는 사후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이용하여, 복음은 우리의 삶뿐 아니라 우리의 재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진리를 생생하게 예시하고자 하셨다는 개념을 지지한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AD 1세기)는 “헬라인들에게 한 하데스[음부]에 관한 강론”에서 누가복음 16장에 나온 이 비유와 매우 흡사한 표현들을 사용하여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다.2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무시함으로써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돕는 것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우리 속에서 역사함으로써 생기는 마음의 변화는 반드시 은혜롭고 친절한 외적 행위로 드러날 것이다.

-하데스(Hades, 음부)에 관해 헬라인들에게 한 요세푸스의 강의-

이곳[하데스]으로 내려 간 자가 있는데, 우리가 믿기로 그곳의 문 앞에는 많은 무리와 함께 천사장이 서 있고,
이들이 문들을 통과해 들어 갈 때 각 영혼을 맡은 천사들의 인도를 받지만 모두 같은 길로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인은 오른쪽으로 인도함을 받되, 그곳을 맡은 천사들의 찬양을 들으면서 나아가, 창세로부터 의인들이 거하고 있는 빛의 지역에 이른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지역인 하늘에서 안식과 영원한 새 삶을 기다리는데, 그곳을 우리는 아브라함의 품이라 부른다.
그러나 불의한 자들은 억지로 왼쪽으로 끌려가…지옥 근처에 이른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진저리를 치면서 계속하여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고 거기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로 견디지 못한다. 그들이 이런 광경 곧 그 불의 무섭고 놀라운 기세를 가까이서 볼 때, 임박한 심판에 대한 무서운 생각으로 쓰러진다. 사실상 이미 징벌을 받은 셈이다. 이뿐 아니라, 거기서 그들은 의인들의 조상들[아버지들]이 있는 곳을 보는데, 거기서도 징벌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그들 사이에 깊고 넓은 카오스(Chaos)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명의 의인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없고, 불의한 자 어느 누구도 감히 용감하게 그곳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다(William Whiston, trans. The Works of Josephus [Peabody, MA: Hendrickson, 1987], 813, 814).

Tom Shepherd

<미주>
(1). 이름이 구체성을 부여하여 중요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부자의 이름이 이 이야기에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의미 있다. 부자의 이름은 언급되고 거지는 무명으로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이 정상이다. 기대를 반전시키는 것이 이 이야기에서 주요 주제가 될 것이다.
(2). See William Whiston, translator, The Works of Josephus (Peabody, MA: Hendrickson, 1987), 813, 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