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어게인] 전지은 양의 ‘네 팔이 되어줄게’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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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대 사회복지학과 전지은 양은 지난 연말 글로벌 미션 봉사대 일원으로 네팔에서 활동했다.
삼육대는 이번 겨울방학 동안 몽골, 인도,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9개국에 20개 팀 259명의 국외봉사대를 파견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반 만의 대규모 해외봉사대였다.

사회복지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전지은 양도 동계 글로벌 미션 봉사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2명의 지도교수 및 12명의 대원과 함께 네팔에서 2주 동안 활동하고 돌아왔다. 그의 수기를 옮긴다. – 편집자 주 –

■ 첫 봉사지 St. Devi’s English School
지난해 12월 26일, 우리 일행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네팔로 향했다. 스리랑카를 경유해 처음 비행을 시작한 지 약 12시간 만에 트리뷰반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은 무질서하게 뒤엉킨 대중교통과 자가용의 행렬이었다. 각종 상점과 뿌연 매연 그리고 시끄러운 경적도 낯선 도시의 시내 풍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돈되지 않은 듯, 날 것 그대로의 환경이었다. 그러나 두렵고 거부감이 들기보다 오히려 설렘이 느껴졌다. 예상보다 한결 따사로운 카트만두의 날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첫 봉사지인 St. Devi’s English School를 방문했다. 마냥 귀엽기만 한 어린아이부터 의젓한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나와 따뜻하게 환영했다. 한국 동요까지 불러줘 감동이었다. 봉사대원 한 명 한 명에게 다가와 직접 천을 둘러줬다. 환영식을 그저 즐기고 있자니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이 비교적 부실하게 전해지지 않을까 은근 염려가 앞섰다.

그러나 헛된 걱정을 했다는 것을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깨달았다. 학생들은 우리가 방문했다는 사실 자체에 행복해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표시하며 좋아했다. 그 애정에 힘입어 나도 더욱 열심히 한글 수업을 진행했다. 한 명 한 명과 교감하려 노력했다. 한글 수업을 진행한 후 실력파 학생들과 배구경기 한판을 벌였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내내 그들이 보여준 순수한 모습에 말로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나를 좋아해 주는 이들을 향한 고마움, 일회적인 만남이라는 아쉬움, 밝고 힘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 등 복합적인 생각에 휩싸였다. 뿌듯함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첫 봉사지에서의 일정을 마쳤다.


미션 어게인 – 전지은 양의 ‘네 팔이 되어줄게’ ①

■ 가슴 따뜻했던 생애 첫 양로원 방문
네팔에 도착한 지 사흘째. 봉사활동으로는 두 번째 날이 시작됐다. 도로가 포장되지 않아 덜컹거리는 자동차가 여전히 불편했지만, 계속 이동하다 보니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었다. 무질서하다고 생각했던 네팔 교통의 첫인상이 뒤바뀌고 있었다. 그속에서 나름의 질서와 친절, 여유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네팔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며 점점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동해 도착한 두 번째 봉사지는 한 양로원이었다. 가장 열심히 준비했던 리코더 연주, 안무 무대를 선보여야 했기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예행연습을 했다. 모든 어르신이 자리하신 후에 준비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다행히 미리 연습했던 연주와 안무 무대는 순조롭게 끝났다.

그러나 모든 순서가 그렇게 잘 진행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번째 봉사지에서 우리는 가벼운 난관에 봉착했다. 준비한 무대 이후에 어르신들과 함께 그림 도안을 색칠해야 하는데 색연필이 사라진 것이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었기에 급히 건강박수를 알려드리는 시간으로 변경했다. 봉사대장 선배의 발 빠른 대처 덕에 양로원에서의 활동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양로원을 방문해 본 적도 없다. 네팔에서의 양로원 방문이 내 인생 첫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저 따뜻하기만 했다. 우리가 준비한 노래에 맞춰 밝은 얼굴로 함께 춤추시던 할아버지, 선물을 꼭 붙잡으시고 연신 고맙다며 인사하시던 할머니, 눈이 마주치면 미소로 화답해 주시던 양로원 식구들까지. 어르신들을 어려운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더 마음을 열지 못한 건 오히려 나였던 것 같다. ‘한 분이라도 더 손을 마주 잡고 온기를 나눠드릴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양로원에서의 시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후회가 지속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자는 다짐을 한 뒤 다음 봉사지인 보육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무척 험했기에 밥을 든든히 먹어둬야 했다. 네팔 대표 음식인 ‘달밧’(Dal Bhat) 식당을 방문했다. 처음 마주한 달밧은 한국의 집밥 같았다. 국, 밥, 반찬으로 구성된 한 상이 차려졌다. 다소 이국적인 맛이 나긴 했지만, 미각이 무딘 내 입맛에는 잘 맞았다. 달밧을 주문하면 무한대로 음식을 제공해 주는데 여기서 네팔의 인심이 느껴졌다. 덕분에 오랜만에 고봉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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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잊히지 않는 보육원 아이들의 미소
식사를 든든히 하고, 차에 올랐다. 약 2시간 정도 고부랑길과 비포장도로를 내달렸다. 마치 오프로드 액티비티를 체험한 것 같았다. 몸이 계속 흔들리고 엉덩이도 아팠지만, 마냥 즐거웠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풍경이 ‘고통’을 다 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노란 유채꽃밭부터 계단식 논, 멀리 보이는 산 능선까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해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어서 더욱 아름답게 다가왔다.

기분 좋게 보육원에 도착했다. 보육원을 운영하시는 사모님과 선생님들, 아이들이 나와 우리를 반겼다. 시설의 곳곳을 소개받으며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대원들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한 마땅한 공간을 찾아 한자리에 모였다. 네팔 민요 ‘레쌈삐리리’가 모든 봉사지에서 통했기에 우리는 방문하는 곳마다 이 노래를 열창했다. 우리 봉사대의 인사말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종이접기 및 풍선아트 활동을 했다. 가르쳐 주는 대로 곧잘 따라해 칭찬하면 수줍게 미소짓던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지금도 눈가에 선명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계속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부끄럼을 많이 탔지만 소극적이지 않고 열정적이었다. 어느새 활동 공간은 색종이와 풍선, 아이들의 신난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네팔에서는 ‘헤어짐’이 유독 아쉬웠다. 매번 한창 즐거울 때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활동을 더 오래 같이 해주고 싶고, 그들이 즐기는 모습을 더 오래 지켜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떠나야만 했다. ‘확실하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돌아오는 내내 가슴에 먹먹하게 남았다.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