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어게인] 재난을 대비하는 예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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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재 목사는 16세기 재침례파 공동체의 예배를 중심으로 ‘재난을 대비하는 예배 교육’에 관해 조명했다.
시조사 단행본 편집장으로 사역하는 이훈재 목사(신학박사, 예배학 전공)가 삼육대 신학연구소가 발간하는 학술지 <신학과 학문>에 기고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16세기 재침례파 예배의 신학적 함의’의 일부를 발췌 요약했다.

이훈재 목사는 이 글에서 재침례파 공동체의 예배를 중심으로 ‘재난을 대비하는 예배 교육’에 관해 조명했다.

재침례파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주로 영접하는 신앙 고백 없이 단지 교회의 형식적인 세례를 받음으로 신자가 되고 천국의 백성으로 보장받는다는 당시 교회의 관행에 반대하며 일어났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 고백을 하는 형제들이 모여 유아 세례를 반대하고 진정한 의미의 회개의 침례를 다시 받았다. 이로 인해 당시 주류 개혁자들에게 혹독한 핍박을 받아 예배 공동체의 붕괴 위기에 이르렀다.

이훈재 목사는 감염병 팬데믹 시대를 지나며 16세기 재침례파가 추구했던 예배 신학과 실천이 또 다른 재난이 반복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재림교회가 예배의 본질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통찰을 제공한다고 봤다. 전체 논문과 출처를 확인하고 싶은 독자는 http://syutheology.or.kr/?c=4/103 를 참조하면 된다.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개신교는 정규 예배 모임 중단과 성직자 중심 예배 운영의 한계라는 예배 붕괴 위기에 봉착했었다. 감염병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대한예수교 통합 총회가 교단 소속 목회자 1,1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43.8%rk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로 ‘예배 본질에 대한 정립’을 꼽았다. 코로나 사태로 현장 예배가 축소되고 예배에 새로운 형식이 요구되면서, ‘예배가 무엇인지’ ‘어떻게 예배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변두리에 있던 재침례파(Anabaptist)는 주류 종교개혁자들과 그 후손들 눈에는 사회와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미시적 역사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비주류 이단이었던 재침례파의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 맥락에서 본다면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만든 공중 예배 금지와 제한 그리고 교인들의 탈 교회 문제는 재침례파가 핍박과 박해 때문에 공중 예배를 할 수 없었던 특수한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들의 예배 신학과 실천이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특히 재림교인에게 예배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통찰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재침례파는 1525년 취리히에서 활동한 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의 개혁운동으로부터 분리되면서 시작했다. 둘의 분열은 교회에 대한 이해와 유아침례에서 발단되었다. 성인 신자의 침례만 인정한 재침례파는 신약의 초대교회를 모델로 교회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그들은 이교적 전통으로부터의 회복주의를 엄격히 실현해 가려고 노력했다.

특이한 점은 약 700년 동안 박해를 받아온 왈덴스인(Waldesians)처럼 성경을 사랑하고 읽은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순수한 열망을 가진 종교개혁의 후예였다는 점이다. 성경을 바탕으로 한 소그룹, 평신도 중심 그리고 공동체 정신이 두 공동체의 공통점으로 꼽힌다.

그럼 재침례파가 핍박 속에서도 그들의 예배와 공동체를 지켰던 방법에 대해 기술해 보고자 한다. 앞서 밝힌 것처럼 그들의 예배 교육은 현대에 일어날 수많은 재난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감염병으로 다시 돌아보게 된 ‘예배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첫째, 재침례파의 교회 개념은 신약성서의 원초적 가르침에 따라 ‘교회 건물이 교회’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회란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는 남녀 성도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인 가시적인 독립체를 뜻한다. 핍박과 박해가 일어나자 재침례파는 교회(교회 건물) 밖으로 나갔다. 가정집, 숲속 그리고 성벽 등 어느 곳이나 그리스도인이 모인 곳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가 되었다.

코로나19로 교회를 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개신교인들은 방역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교회 건물에 모여 예배를 드리려고 했다. 가능하면 전 공동체 일원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한다. 재난 상황이 완화되거나 종료되어도 교회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것은 교회 공동체의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감염병과 같은 특수한 재난 상황 속에서는 교회 건물 밖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예배 장소를 찾지 않으시고 참된 예배자를 찾으신다(요 4:23).

둘째, 재침례파는 만인제사장주의를 성경 그대로 믿고 실천했다. 예배를 인도하고, 공동체를 돌보는 목회자가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교회 일들은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가톨릭이나 다른 개신교가 지나치게 성직자에게 의존하는 것과 달리 그들은 예배에서 평신도의 역할과 참여를 능동적인 문화와 구조로 개발해 나갔다. 모든 신자는 성경을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신자 간에 권면하고 위로했다. 혹독한 박해 기간 재침례파 교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는 성경이 있었고, 함께 모인 소모임에는 말씀 나눔과 돌봄이 있었다. 현대 개신교 예배는 지나치게 목회자 한 사람의 설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교과공부라는 성경공부 전통이 있는 재림교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평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함께 모일 수 없는 재난 상황에 빠지면 교인들은 의존적 신앙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 교인 한 명 한 명을 수동적이고 타의적인 관중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제사장으로 세워야 한다.

셋째, 재침례파의 예배는 믿음을 고백하는 성인 침례와 신자의 제자도를 강조한다. 그들은 입교부터 철저했다. 태어날 때부터 유아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수를 깨달은 이들이 믿음의 고백으로 침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들이 고백한 침례는 피의 침례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들은 고통과 핍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신자의 침례 후 재침례파는 예배를 통해 제자도를 전수했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끝까지 가도록 돌보고 이끌었다. 교세 확장을 위해 그리스도인의 문턱을 낮춘 결과를 우리는 이미 한국 개신교의 여러 문제를 보고 확인할 수 있다. 수가 아니라 질을 높여야 할 때다. 입교 절차와 입교 후 제자도에 대한 고민을 더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넷째, 재침례파는 특정한 날이나 장소와 관계없이 매일의 일상과 삶 전체를 거룩하게 만들었다. 이 관점은 특정한 날과 장소에만 신성함을 부여하고, 그 외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는 거리가 먼 많은 개신교인들에게 도전이 되는 대목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이원론적으로 나누지 않았듯이 성과 속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래서 그들을 가리켜 반-성례주의자라고도 불렀다.

당시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린 재침례파에 대해서 호의를 갖고 관심을 가진 이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그들의 말과 태도를 포함한 그들의 일상의 삶 때문이었다. 필자의 신앙 전통으로 해석한다면, 재침례파 이후에 등장한 재림교회처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거룩함을 시작으로 나머지 한 주의 시간과 장소를 더 온전하게 성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정한 날에 대한 거룩 관념과 매일의 일상을 성스럽게 하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함으로 향하는 순환구조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재침례파는 공동체주의를 추구했다. 특이한 점은 그들의 예배가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주의 만찬에 모인 신자들은 놓인 떡과 포도즙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했다. 신자의 침례가 입교 절차였다면, 입교한 신자의 권리는 주의 만찬을 누리는 것이었다.

이 예식을 통한 연합과 더불어 재침례파는 예배가 마치면 언제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참석하지 못한 교인에 대해 서로가 책임지고 돌보았다. 즉 소수의 목사가 교인을 돌본 것이 아니라 교인들 스스로가 연약한 교인들을 돌보았다. 필자가 정리한 다섯 가지 재침례파의 예배 신학과 실천은 각 각 분리된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공동체로 모아지고 공동체가 곧 참된 교회라는 점을 알려준다.

재난을 대비하는 예배 교육 다섯 가지 키워드를 요약하면 이렇다. 성경적 교회관과 예배관을 교육 / 목회자의 설교에만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성경을 읽고 나누는 제사장-교인 / 침례 후에도 계속 성장하도록 돌보고 양육하는 제자도 / 안식일과 예배당만 거룩함을 넘어서 일상의 시간과 장소도 거룩해 지는 성례적 순환 구조 / 공동의 예배 후에도 교인들이 스스로 연약한 교인들을 돌보는 살아 있는 공동체

어떤 패러다임 자체가 반성의 대상으로 부상한다는 것은 그 패러다임이 몰락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현대 개신교 예배는 이미 상당한 시간 동안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요구가 있어 왔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상황 때문에 재림교회 예배가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 있던 우리의 문제가 드러난 것일 뿐이다. 기존의 예배 패러다임이 반성의 대상이라면, 그 패러다임이 실패해 왔다면 패러다임을 전환하면 된다.

재림교회가 재침례파와 똑같은 급진적 방향으로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16세기에 재침례파가 추구했던 예배 신학과 실천이 또 다른 재난들이 반복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 재림교회에게 예배의 본질로 한 발 더 다가서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