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순희 집사가 수해로 배운 ‘실물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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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희 집사가 완전히 침수돼 텅 빈 진열장을 보고 있다. 이 집사는 “그래도 원망보다 감사가 먼저”라며 미소 지었다.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을 잇는 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봄이면 벚꽃이 만개해 터널을 이루고, 여름이면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함을 더한다. 가을이면 쌍계사와 피아골의 단풍이 절경을 이루고, 겨울이면 소복이 쌓인 눈에 덮여 동화 같은 풍경을 자아내는 사시사철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요얼마간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참하고 안타까운 길이 되고 말았다. 역대 최장 장마와 겹친 집중호우로 마을과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영-호남 화합의 상징’이라는 화개장터도 수마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순희 집사(하동교회)의 가게는 그 중심에 있었다.

3년 전부터 화개버스터미널 1층에서 삼육유기농자연식품 대리점을 운영해 온 이 집사는 지난 7일과 8일 사이 섬진강 지류 화개천이 범람하며 30여평 규모의 상점이 완전히 침수되고, 쌓아두었던 제품과 냉장고 등 집기류가 물에 떠내려가면서 6000만원의 재산피해(합회 보고 기준)를 입었다.

게다가 침수된 가게는 리모델링을 해야 할 정도로 파손이 심각하다. 삼육식품을 통해 건강기별과 복음을 전하려고 차린 가게는 하루아침에 폐허가 됐다. 기자가 현장을 찾았던 날도 그랬다. 이미 물이 빠져나가고 상당 부분 복구했지만, 피해가 그대로 드러났다. 상품이 가득 찼던 진열장은 휑하니 텅 비었고, 가게는 천장까지 물에 젖어 있었다. 뒤편에 있는 방도 물에 잠겨 벽지를 다 뜯어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

“금요일 밤부터 비가 억수로 쏟아졌어요. 앞이 안 보일 정도였죠. 그래도 이정도일 줄은 생각 못했어요. 안식일 새벽에 이웃 가게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강이 넘쳐서 가게가 다 잠겼다고. 부랴부랴 와 보니까 물건이 둥둥 떠다니고, 냉장고가 다 뒤집어져 아수라장이 됐더군요. 뉴스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예요”


르포 – 이순희 집사가 수해로 배운 ‘실물교훈’
(▲ 집중호우로 큰 피해가 발생한 화개장터 모습. YTN뉴스 캡처)

사정이 이런데도 이순희 집사는 원망보다 감사를 먼저 입에 올렸다.  

“인명피해가 나지 않은 게 어디에요?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 다행이었죠. 더 큰 피해를 입은 분들에 비하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죠. 가게를 치우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신다’는 말씀이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오히려 마음에 위로가 느껴져요. 앞으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도 되고”

이 집사는 이번 수해가 절망이 아닌, 기회가 됐다고 했다. 특히 교회의 사랑과 도움에 큰 힘을 얻었다. 교회가 어떤 곳인지, 어려울 때 얼마나 용기가 되는 공동체인지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됐다.

“자원봉사자가 투입되기 전부터 하동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엉망이 된 가게를 치워주셨어요. 생각지도 않았는데, 동광양교회 청년들이 찾아와서 누구보다 먼저 도와줬죠.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참 많은 분들이 와서 일손을 거들어주셨어요. 시시때때로 필요한 인력이 차례로 와 주셨죠. 덕분에 아주 일사분란하고 신속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내려온 성남에서 목회하는 아들도, 초신자인 남편도 그런 모습에 먹먹한 감동을 받았다. 같은 신앙을 한다는 것, 교회를 세운 목적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이순희 집사 가족에게 이 모든 상황은 감사의 조건이다.


르포 – 이순희 집사가 수해로 배운 ‘실물교훈’
“오랜만에 ‘방학’을 맞았어요. 누군가는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 있냐’고 하는데, 그 정도로 마음이 평안해요. 환란 중에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저의 심령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있어요. 난생 처음 겪은 홍수가 저에겐 ‘실물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수해를 ‘실물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까닭이 있다. 애지중지했던 재물을 순식간에 잃고 나니 그 모든 게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잠시 자신에게 맡겨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주변을 세심하게 돌아보며 이웃을 좀 더 살뜰하게 챙기지 못한 게 떠올랐다.

“더 많이 주지 못하고, 나누지 못했던 것들이 마음에 걸려요. 사람들에게 야박하게 대했던 일들이 생각나 엄청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는 진실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했습니다. 이번에 누군가 저의 필요를 채워주었듯, 이제는 저도 다른 이들을 먼저 돌보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즘에는 수해 와중에 건진 제품과 먹거리들을 주변 이재민에게 나눠주며 용기를 북돋고 있다. 자신도 큰 피해를 입었으면서, 다른 사람을 먼저 돕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일상을 다시 회복하려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 가게를 정상적으로 되돌리려면 얼마만큼의 자금이 들어가야 할지 걱정이다.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모든 걸 하나님께 맡겼다. 이 사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건 전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 비전을 성취할 수 있을지 기도하는 중이다. 하나님께서 나아갈 방법을 알려주시리라 믿는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자신이 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넘치게 채워주시리라 확신한다.  

“이 환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어려움을 당할 때, 감사할 수 있다는 건 그리스도인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아요. 사실,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지 뭐가 두렵겠어요? 이럴 때일수록 더욱 파이팅 해야죠. 안 그래요?”

많은 분들이 함께 염려하며 걱정하고 있다고 하자, 그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위로하러 갔다가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밝은 미소와 씩씩한 목소리에서 그게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르포 – 이순희 집사가 수해로 배운 ‘실물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