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과 쓸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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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등장하는 나라들이 전쟁을 통해 쓰라린 패배를 잊지 않고 이를 발판 삼아 다시 일어서 승리하기 위한 교훈을 삼은 것처럼, 우리네 삶에서도 의미 없는 시련과 고통은 없다. 삶의 쓰리고 아픈 시간과 경험을 토대로 한층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

오월동주(吳越同舟)
중국의 춘추 전국 시대에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오나라의 합려와 월나라의 윤상은 서로 앙숙이었다. 그러다 월나라 윤상의 아들인 구천이 아버지의 원수인 오나라 합려를 죽였다. 그러자 합려의 아들인 부차도 가만있지 않았다. 아버지를 죽인 구천을 원수로 삼아 괴롭혔다. 이처럼 오나라와 월나라는 대를 이은 원수 사이였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하늘 아래 함께할 수 없는 사이지만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에 오르게 되었는데 폭풍이 불어닥쳐 서로 돕지 않으면 모두 죽을 운명에 처한다면, 같은 배에 탄 두 사람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로 힘을 합쳐 사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것이다. 사자성어 ‘오월동주(吳越同舟)’는 바로 이런 상황을 빗대어 “사지에서는 원수지간이라도 힘을 합치게 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사자성어에서 보는 것처럼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 관계를 나타낼 때 단골처럼 등장하는 나라들이다.

장작더미 위에 눕다
다시 이 두 나라 사이의 전쟁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오나라의 합려와 월나라의 구천은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오나라의 합려는 월나라의 구천에게 대패하여 항복하였다. 항복한 오나라 왕 합려와 세자 부차는 갖은 수모를 겪었다. 합려는 죽기 전에 아들 부차에게 “반드시 구천을 죽여 아비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신신당부하며 숨을 거두었다. 아들 부차는 왕이 된 후에 언젠가 반드시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다짐했다.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락한 잠자리를 거절하고 매일 불편한 장작더미 위에 누워 잠을 잤으며, 사람을 시켜 자기가 출입할 때마다 뜰에 서서 “부차야! 너는 월나라 왕 구천이 아비를 죽인 것을 잊었느냐?”라고 외치게 했다. 결국 그는 3년 만에 아버지의 원수인 월나라 왕 구천과 전쟁을 벌여 마침내 승리했다.

쓸개를 맛보다
이렇게 전쟁에서 패한 월나라 왕 구천은 어쩔 수 없이 부차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게다가 오나라 왕 부차는 한 나라의 왕이었던 구천에게 자신의 부왕인 합려의 묘지기 일을 보게 하고, 왕후와 함께 머리를 삭발시키는 등의 치욕을 안겼다. 그렇게 겨우 목숨을 구걸하여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구천은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러면서 패배의 한을 씻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갈았다. 그는 방 안에 짐승의 쓸개를 걸어 두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방을 드나들며 그 쓸개를 핥았다. 이는 오나라 왕에게 당한 치욕을 되새기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함이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다시 오나라와 월나라는 전쟁을 벌였다. 복수심에 불타 암암리에 전쟁을 철저히 준비한 구천에게 오나라의 부차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결국 오나라의 부차는 전쟁에서 패했고, 오나라는 망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월나라의 구천왕이 중국 전체를 통일하였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우리가 잘 아는 사자성어 ‘와신상담(臥薪嘗膽)’은 ‘누울 와(臥), 섶나무* 신(薪), 맛볼 상(嘗), 쓸개 담(膽)’이다. 이는 직역하면, “땔감 위에 누워서 잠을 자고(臥薪), 짐승의 쓸개를 핥는다(嘗膽).”는 뜻을 갖고 있다. 오늘날에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괴롭고 어려운 시간을 참고 견딘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한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나라들이 전쟁을 통해 쓰라린 패배를 잊지 않고 이를 발판 삼아 다시 일어서 승리하기 위한 교훈을 삼은 것처럼, 우리네 삶에서도 의미 없는 시련과 고통은 없다. 삶의 쓰리고 아픈 시간과 경험을 토대로 한층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으면 된다. 시련과 고통을 통해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다. 실패를 교훈 삼아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느덧 우리는 2022년 12월!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잠시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면, 기쁜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많이 있었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지만, 돌이킬 수만 있다면 돌이키고 싶은 그런 순간도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건강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은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업에 실패하였거나 장사가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그 어느 해보다도 큰 타격을 입어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낸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쓰리고 아픈 경험,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아무 때고 예고도 없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바로 그러한 때에 우리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나 경험을 초석으로 삼아, 다시 일어설 디딤돌로 삼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새로운 시간, 새해가 열릴 것이다. 새롭게 일어나서 새롭게 출발하자. 성경에도 쓰리고 아픈 경험을 한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런 고난의 시간 동안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마침내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종살이하던 때를 돌아보며 맛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으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중략)이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레위기 23장 27~29절 참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다짐으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면 좋겠다. 묵은해를 보내며 굳이 장작더미 위에 누워 잘 필요도 없고, 굳이 쓰디쓴 쓸개를 맛볼 이유도 없다. 그저 지나온 날들에 대한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갖고 우리 앞에 놓인 희망찬 새해를 준비하는 12월이 되길 소망한다.
주) * 섶나무: 잎이 붙어 있는 땔감이나 잡목의 잔가지를 통틀어 이르는 말

박재만 본사 편집국장

가정과 건강 12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