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평등해야 할 대중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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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대중교통답게 모든 대중에게 평등했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함이 생긴다. 그렇게 되려면 적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교통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을 둘러싼 쟁점 중에 이동권과 관련한 이슈는 뜨거운 쟁점으로 조명되고 있다. 사실 나는 지하철 시위 방법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변화된 계기가 있었다. 수업에서 제시된 과제를 하던 중 개인적인 필요성에 의해 전 세계의 장애인 인권운동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유목화(편집자 주: 언어 및 경험의 차원을 오르내리면서 지각을 변화시키는 방법)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깨닫게 된 교훈이 있다. 그것은 ‘소수자의 권리는 끊임없는 투쟁과 외침이 있어야 쟁취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회적 약자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연대의 정신이 필요함을 느꼈다.
   나는 이 글에서 평소 느끼고 경험한 이동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교통수단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며, 그 나라의 인권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적인 척도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이동권은 누군가, 즉 교통 약자를 배제하고 있다.

절실한 이동권
나에게 있어서도 이동권은 절실하다. 나의 집이 있는 경기도에서 학교가 있는 경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장애인에게도 이렇게 먼 거리를 오고 가는 것은 힘든 과정일 것이다. 특히나 지하철, 기차, 저상 버스(또는 장애인 콜택시)를 연쇄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체력적으로도 힘이 덜 들겠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지하철이나 기차와는 달리 학교로 가는 시내버스나 장애인 콜택시가 바로 오지 않으면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노숙인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편한 체육복 대신 청바지와 와이셔츠 등으로 차려입게 된다.

나는 대구 동성로나 대구 시내의 스터디 카페에 자주 간다. 내가 대학에서 대구 시내까지 이동하는 방법은 좀 독특하다. 우선 장애인 콜택시를 부른 다음 학교 정문의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만약 운 좋게도 저상 버스가 장애인 콜택시보다 먼저 오고, 버스 기사가 승차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불러 놓았던 장애인 콜택시를 취소한다. 버스와 콜택시의 요금 차이가 별로 크지 않지만 몇 천 원이 더 싼 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편이다. 사실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편하지만은 않다. 왠지 모르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명히 저상 버스이고 승객이 적음에도 승차 거부를 당할 때면 사회가 냉철하다는 생각도 든다.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리프트
가끔 역사 내에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있더라도 고장이 났다면 계단에 정착된 리프트를 타야 한다. 지하철 역사 내의 리프트를 탈 때면 여러 생각이 든다. ‘나’에게 집중되는 시선과 동정의 시선이 불편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그 상황을 벗어나면 어느 정도 괜찮아진다. 이보다 더 큰 불편함이 있다. 놀이공원의 바이킹, 롤러코스터 등과 같은 놀이 기구는 좋아하지만 지하철에 설치된 리프트를 이용할 때면 “이 리프트를 이용하는 것이 내 삶의 마지막이면 어떻게 하지?”라는 공포감이 몰려온다. 이러한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특히 리프트를 타고 내려갈 때보다 올라갈 때가 더 무섭다.

진정한 문명사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대중교통답게 모든 대중에게 평등했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함이 생긴다. 그렇게 되려면 적어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죽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교통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가 모두 선결되어 길거리에서 한국 장애인뿐 아니라 외국에서 한국으로 관광이나 이민 온 장애인을 자주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양적인 측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왔다. 전 세계가 주목할 만큼 경제, 과학, 문화 등이 발전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과 다양성을 넉넉하게 수용할 수 있는 자세는 부족하다. 진정한 문명사회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 양적 성장과 더불어 우리의 지적 담론 속에 공존, 연대, 평등, 자유라는 주제가 있어야 하고, 이것이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담론으로 안착될 때 비로소 문명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유장군
대구대학교 일반 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석사 과정

가정과 건강 7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