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화학 박사 학위 공부 수난기

50

정수는 정도를 걸을 때 가능한 수이다. 정도란 지루하고 고된 길로 보이지만 꼭 해야 하고 가야 하는 길이다. 공부 또한 지루하고 따분한 길로 보일 수 있지만 테니스 서비스 연습처럼 반복 훈련을 통하여 기본기를 완성하는 것이 공부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꼼수로 시작해 넘어진 뒤 깨달은 지혜이다.

시작은 꼼수였다. 박사 학위 공부는 교무부장이라는 직책을 벗어던지기에 가장 그럴듯한 핑곗거리였다. 미완성의 능력으로 교무부장을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주제 파악이 되는 순간 탈출구가 함께 따라왔다. 마침 학교에 강연을 오셨던 한 교수님이(지금은 지도 교수님이 되셨지만) 평화학을 소개해 주시고 추천해 주셨다. 평화학 박사 과정 등록이 교무부장 직책을 고사하는 근사한 핑곗거리가 되었다. 내심 교무부장 직책을 내려놓으면, 업무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박사 공부는 쉬엄쉬엄하면서 은퇴 계획이나 세우면 될 것 같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정이 자충수였다는 것을 박사 과정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변수와 상수 사이에서
공부는 변수였다. 평화학이라는 학문이 다루는 범위는 넓고 깊었다. 평화라는 주제와 연관된 주제어들은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공부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생태학, 심리학, 역사학, 사회학, 문학, 신학, 경제학, 정치학 그리고 철학 등등의 학문 중 어느 하나도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평화학은 모든 학문의 변주곡처럼 나에게 들렸고, 평화를 해석하기 위해 구성된 씨줄과 날줄을 풀어내는 과정은 매우 어려운 수련 과정이었다. 서재 바닥에 책이 쌓여 가고 복사한 논문이 이리저리 처박히는 것을 보면서 내심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강한 햇살로 인해 드러나는 책과 논문 위로 날리는 먼지처럼 평화학은 나에게 여전히 오리무중의 변수였다. 평화학 덕분에 교보문고의 VIP가 되는 영광은 얻었지만, 평화학은 변수가 많은 고차 함수인지라 쉽게 그 정답을 보여 주지 않았다.
   한편 학교생활은 상수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자연스럽게 동료 교사들이 “박사 과정 하느라 바쁘지?”라고 물을 때 “리포트 제출과 세미나 발표 때문에 죽겠어!”라고 대답하는 뻔한 상수 과장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근사한 핑곗거리를 찾은 김에 다른 것에도 적용해 보기로 작정을 하고, 직업 학교로 전출을 신청하여 학교를 옮겼다. 박사 공부라는 핑곗거리는 효과가 높아 업무강도도 많이 줄어들었고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평화학 공부는 선뜻 그 속살을 보여 주지 않았고, 학교생활은 여유로운데 나는 박사 공부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다. 그리고 다른 것이 찾아왔다. 무언가 집중이 필요하던 시기에 테니스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테니스 구력은 30년 정도 되지만 동네 클럽 회원들과 즐겁게 치는 정도에서 머물러 있었다. 평소에 스트로크나 발리 등의 테니스 경기 기술은 자신이 있었지만 테니스 서비스 기술은 자신이 없었다. 평소 게임에서 서비스 게임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 고민하던 차에 유튜브 동영상 서비스 코치를 보게 되었다.
   테니스는 묘수였다. 평화학 논문 읽기 시간보다 서비스 코칭 동영상 시청 시간이 더 길어지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테니스 코치들이 세심하게 편집하여 올린 서비스 기술 동영상은 나의 서비스 자세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즉 공부에서 메타 인지 학습법이 테니스에 접목된 것이었다. 내가 박사 과정에서 몰랐던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해결하는 절차와 방법은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한편 동영상은 맞춤형이기에 다양한 코치의 다양한 교습을 경험하게 되었고 각각의 서비스 교습의 차이점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테니스 서비스 전문가가 된 착각 같은 경험도 하게 되었다. 테니스는 기본기가 튼튼해야 흔들리지 않고 게임의 승수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이 공부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테니스의 서비스 기술 학습법이 박사 공부는 결국 특정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그것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며 그것은 무엇을 배우든 같은 원리로 작동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기본기는 모든 공부의 최소 공배수다
테니스와 박사 공부의 최소 공배수는 기본기였다. 30년 동안 잘못된 서비스 자세로 동네 테니스 클럽에서 그럭저럭 치던 나의 테니스 레벨은 유튜브 동영상 학습법으로 한 단계 끌어올려졌고 이로 인하여 박사 공부에 대한 나의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은 “나는 정말 박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가?”였다. 꼼수로 시작한 박사 공부에 대한 부끄러운 후회가 밀려왔다. 대학원까지 포함해서 공부한 햇수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열심히 교재 준비를 하며 읽은 책의 수로 따지면 겉으로는 자랑할 만하지만 그것이 아무 쓸모가 없음을 가슴을 치며 인정하였다. 기본기는 닦지 않고 게임 기술만 익혀 게임 승리에 도취한 것처럼 공부의 기본기를 익히지 않고 화려한 말솜씨로 상대방을 현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반성으로 가슴을 때렸다. 두 번째 질문은 “나는 박사 공부의 특정한 주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파고들 수 있는 인내심을 지니고 있는가?”였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서비스 문제는 포기하고 다른 쉬운 기술만 사용하는 미완성된 경기를 하는 것처럼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포기하고 쉬운 문제만을 찾는 나의 안일함이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질문은 “나는 나만의 고유한 주제를 가지고 있는가?”였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의 서비스 자세를 분석하다 보면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조금씩 그 색깔이 다르다. 즉 선수들은 기본적인 테니스의 역학은 같지만 사용하는 방법에서는 자신만의 고유 기술을 지니고 있다. 박사 공부에서는 자신의 독특한 철학과 사고법이 반영되지 않고는 그 결과가 모방에 그치는 아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내가 그동안 지식 전달자였지 지식 생산자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나의 고유한 관점이 없어 남의 말만 인용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자기 노래를 하지 못한 나의 삶을 반추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나의 부족함을 고백하게 되었다. 현재 부끄럽지만 박사 과정 공부는 끝이 났고, 논문 완성 과정만 남아 있다. 다시 고민한다. “그럼 나머지 생은 무슨 수일까?”

꼼수를 넘어 정수로 살고 싶다
나는 정수로 살고 싶다.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보여 주는 정수이기를 바란다. 나는 항상 변하는 변수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상수 사이에 존재하는 정수가 되고 싶다. 정수는 정도를 걸을 때 가능한 수이다. 정도란 지루하고 고된 길로 보이지만 꼭 해야 하고 가야 하는 길이다. 공부 또한 지루하고 따분한 길로 보일 수 있지만 테니스 서비스 연습처럼 반복 훈련을 통하여 기본기를 완성하는 것이 공부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꼼수로 시작해 넘어진 뒤 깨달은 지혜이다.
   나는 지금 다시 직업 학교에서 인문 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업무 또한 중책을 맡아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사 공부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가치관과 인생관이 이전의 꼼수에서, 이후의 정수로 바뀌었다. 여전히 실수하고 꼼수를 부리고 싶은 욕구가 들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언젠가 완성 수인 정수가 될 것을 기대하며, 매일의 삶에 의미를 찾고 있다.

최순규
춘천고등학교 교사, 강원대학교 평학학 박사 과정

가정과 건강 12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