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전파한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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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그리스도께서 전파한 “옥에 있는 영들”은 누구인가?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18∼20).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에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전파하셨다고 믿는다. 이들에게 이것은 죽을 때 몸을 떠난 무형의 영이라는 실제 존재가 있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이런 신조는, 노아 시대에 살던 불경건한 자들은 두 번째 기회를 받았으나 예수께서 모든 시대의 죽은 자들에게 전파하신 것은 아니므로 나머지 죽은 자들은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주장한다.[1]


그리스도인과 고난:

베드로전서 전반에는 베드로의 독자들의 믿음이 시험을 받고 있으며(1:6, 7), 그들이 믿는 것 때문에 부당한 비방과 욕을 당하고 있음이 나타나 있다(2:12; 3:9, 16; 4:14). 자원하여 그들을 위해서 고난을 묵묵히 참으신 예수가 그들이 핍박에 직면할 때 본받아야 할 이상으로 제시된다(2:20∼23; 3:17, 18).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시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3:18). 그분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성령]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

“홍수 이전 시대의 성령의 사역이 그리스도 시대의 사역과 똑같았음이 분명하다. 곧 그 사역은 죄의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거기서 도망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는 것이었다”(F. D. Nichol, Answers to Objections, 350).


창세기 6장과 유대인의 신화:

예수께서 그분의 부활과 승천 사이의 기간에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셨다는 견해를 지지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분이 거기로 가신 것은 악의 세력에 대한 자신의 승리를 선포하기 위해서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옥에 있는 영들”이라는 구절이 창세기 6:4에 근거한 유대인의 신화를 반영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리스도교 이전 시대의 유대 묵시 문헌을 보면, “순찰자”라 불리는 천사들이 지상의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그들과 성적 관계를 맺은 후 거인 자손을 생산했다. 홍수로 이 거인들의 육체는 멸해졌으나 그들의 존재는 악한 영들이라는 형태로 계속 살아있다고 여겨졌다. 하나님께서 이 영들 중 대다수를 심판 때까지 옥에 가두셨다고 말해졌다(참조 에녹서 6:1∼7; 9:7, 8).


죽은 자는 두 번째 기회를 얻지 못함:

베드로가 이런 신화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곧 살펴 볼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된다. 첫째, 이 구절에 대한 현대의 몇몇 패러프레이즈 번역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예수께서 모든 죽은 자들의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개념을 지지하기 위해서 이 본문이 사용될 수 없음을 주지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3장은 시간에 대해서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20절의 해당 부분의 각 구절들은 언급된 기간을 점차 구체화한다.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
구원을 위한 두 번째 기회를 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선택된 소수에게만 전파했다는 식으로 이 본문을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차치하고,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천사들이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아 시대의 불경건한 사람을 가두어 심판 때에 징벌을 받도록 하셨음을 확언함으로써(벧후 2:4∼9), 그들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배제시킨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방문하심:

예수께서 이 영들을 어떻게 방문하셨는지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19절에 대한 가장 자연스럽고 정직한 이해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그분의 영을 통해서 그들에게 가셨다. 몇몇 역본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베드로가 예수께서 몸과 분리된 형체 없는 영의 상태로 그들에게 가셨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이 이 편지의 다른 언급들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베드로전서 1:11은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를 통해 이르러 올 구원을 예언하는 데 선지자들을 어떻게 지도하셨는지를 묘사한다. 노아도 구원의 기별을 선포했다. 베드로는 노아를 “의를 전파하는 [자](벧후 2:5, 헬라어 케뤽스)”로 칭하는데, 이 단어는 베드로전서 3:19에 나오는 “전파하다”(헬라어 케뤽소)라는 동사와 같은 어근을 가진 말이다. 사실 신약에서 이 단어들은 오직 복음 전파를 가리키는 경우에만 사용된다.[2] 그러므로 이 성경절이 예수께서 귀신의 영들에 대한 당신의 승리를 전파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렵게 보인다. 이 영들이 패배하여 옥에 가두어져 심판의 날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다면 왜 사도행전이나 바울의 편지들 그리고 요한계시록 등에 악한 세력과 계속되는 투쟁에 대해 언급하는 구절이 여전히 많이 있는가? 또한 에녹 1서의 저자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악한 영들의 일부만을 옥에 가두셨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노아 시대에 [마귀와] 전쟁을 치르고 계셨다. 옛 세상의 거주자들에게 경고와 책망과 초청의 기별을 발한 것은 그리스도의 음성이었다.”(리뷰 앤드 헤럴드, 1901년 3월 12일).

예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노아를 통해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것이 이 난해한 본문에 대한 최선의 이해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해 책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6:5). AD 1세기에 하나님의 영께서 제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홍수 시대에도 노아를 통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사 61:1; 42:7),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전파하는 것이 그분의 사역에 포함된다고 말씀하셨다(눅 4:18).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영”이라고 칭한 것이 현대인에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영혼”(soul)이라는 말을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는 자주 인간 존재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3 베드로전서 3:19에서 프뉴마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노아를 통해서 전파된 구원의 기별과 사람들 간의 영적 관계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홍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안전하게 보였을 것이지만 그들의 세상이 홍수로 멸해질 운명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사형수의 감방”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노아를 통해 전파된 경고를 받아들이고 방주로 들어가는 데 있었다.


베드로의 시대를 노아의 시대와 비교함: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이 사는 시대와 노아의 시대가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다(참조 마 24:37∼39). 그는 긴박한 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들에게 쓰고 있다(벧전 1:3∼7; 4:17; 참조 벧후 3:5∼7). 그는 또한 노아와 그의 가족이 당시의 인기 있는 견해에 대항하는 극소수로 서 있었던 것처럼, 베드로의 독자들도 소수이고 그들의 믿음이 부당하게 비방과 욕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침례를 통해서 “방주에 들어갔”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하고자 한다. 베드로는 침례를 지칭하여, 방주 안에 있던 자들이 경험한 구원의 “표”(헬라어 안티튀포스, “원형”)라고 말한다(벧전 3:21).[4] 노아와 그의 가족처럼, 신자들도 침례(“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음”)가 새로운 세상으로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는 보증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옛 세계의 불가피한 멸망을 맞이할 수 있다. 베드로는 곧바로 침례 자체가 사람을 구원할 순 없다는 것을 덧붙여 말한다. 침례가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반응을 나타내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노아와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 힘입은 바로 그 영께서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구원을 얻으라고 호소하신다. 그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는” 분이시다(벧전 3:22).

Clinton Wahlen


<미주>

[1] 재림교인들은 일반적으로 베드로전서 3:18∼21을 본 기사에 개괄된 것처럼 해석한다. 그러나 근자에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들에게 가셔서 “그분의 추종자들에겐 복음이지만 귀신들에겐 심판인 기별 곧 ‘나, 예수 그리스도는 정복자이다. 내가 승리를 거뒀다(골 2:15)’라고 선포했다고 가르치는 해석이 개진되었다. 이런 해석들이 영혼불멸을 명백하게 부인하기 때문에 재림교회 신앙에 배치되진 않는다(Ekkehardt Mueller, “1 Peter 3:18∼22,” Reflections 13 [January 2006]: 6).
[2] 요한계시록 5:2과 아마도 누가복음 1:23은 예외이다. 명사 케뤽스는 다른 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로 바울만을 지칭한다(딤전 2:7; 딤후 1:11; 골 1:23). 이와 관련된 또 다른 명사 케뤼그마는 복음 선포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3] 예컨대, 민 16:22; 27:16; 시 76:12; 고전 14:32; 히 12:23; 요일 4:1; 계 22:6 등.
[4] 유사한 방법으로 바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홍해를 건넌 것에 침례를 비유한다(고전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