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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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을 폐하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5).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에베소서 전체의 주제를 파악한 다음 본문의 전후 문맥에 비추어 사상의 흐름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통해 그분의 뜻의 비밀을 나타내셨다고 말하는 에베소서 1:9, 10에 주제가 잘 요약돼 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다. 이 통일의 요소들을 낱낱이 언급하면서 이 서신은 하나님과 인류 사이의 불통일이 해결되고 악의 세력은 제거되어야 하며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간과 불화가 끝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유업을 이을 자가 되어 이 둘이 한 몸을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약속을 함께 나누는 것이 복음에 계시된 비밀이다.


이방인이 하늘의 시민이 됨:

에베소서 2:15의 직접적인 문맥을 이루는 2장에서, 2:11∼22에 묘사된 이방인과 유대인의 연합을 위한 근거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칭송된다(2:1∼10). 이 문단은 이방인들의 분리되고 절망적인 상태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시작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할례 받은 유대인들에게 경멸을 받으며 “무할례당”이라 불렸고(2:11), 다른 한편으론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2:12).
이는 잃어버림을 당한 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하지만 13절에서 앞의 모든 것을 바꾸는 “그러나”라는 단어(<개역한글판>에는 생략되어 있음)와 함께 대반전이 시작된다. “그러나”가 알리는 변혁의 결과가 에베소서 2:19∼22에 나온다. 이방인들은 더 이상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이제 그들이 속한 권속은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 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 새로운 영적인 권속 또는 성전에서, 놀랍게도 과거에는 하나님이 없던 자들(12절)이 하나님의 처소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연합시키심:

어떻게 이런 일이 모두 이뤄지는가? 에베소서 2:13∼18에 그 길이 묘사된다. 고대에 희생제물의 피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제단으로 옮겨진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에 힘입어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까워지고 유대인들과 더불어 하나님께도 가까워졌다. 14절의 표제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강”이다. 더 이상 이제는 “우리와 그들”이 아니라 그냥 “우리”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의 소유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안에 평강이 있으며, 따라서 그분과 연합하는 것이 이 땅이나 하늘에서 평강을 얻는 길이다.
평강에 이르는 길은 에베소서 2:14∼16에 설명돼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기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신다(2:15). 유대인과 이방인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동시에 이루신 세 가지 사건으로 하나가 된다. 그분께서 (1) 둘 사이에 있는 분리의 벽을 허무시고 (2) 적대감(“원수된 것”)을 끝내셨으며 (3)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 가장 중요한 일은 둘 사이의 적대감을 끝낸 것이다(14, 16절).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적대감도 죽게 된 것이다.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있는 분리의 벽을 허무심으로써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 벽이 바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런 규정들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분리와 적대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이제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번제나 희생제물 그리고 유대인에게만 특별한 어떤 것들이 더 이상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길이다”(D. Martyn Lloyd-Jones, God’s Way of Reconciliation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72], 209).


허물어진 벽은 하나님의 도덕법이 아님:

그러면 허물어져야 할 장벽으로 있던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율법에 포함된 도덕적 원칙들이 아님은 확실히 주장될 수 있다. 에베소서 2:15은 율법폐지론적인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분의 명령의 폐지를 말하지 않는다. 그 명령은 십계명에 확대돼 있고(출 20:2∼17), 예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는 말로 시작하시는 마태복음 5:17∼48에 심화돼 있다. 율법의 도덕적 측면이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적대감을 불러일으켜, 그 도덕적 원칙들이 폐해져야 둘 사이에 평화가 이뤄질 수 있었는가? 사랑과 공의의 기초적인 표준이 없어지면 어떤 종류의 평화가 이뤄질 수 있는가? 평화 대신 전쟁이 그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런 것은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우리의 결론을 지지하는 데 인용될 수 있는 여러 구체적인 사항이 에베소서에 있다. 첫째,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며 불순종의 자녀로 살던 과거(2:1, 2)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는데, 이 일은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길로 예비하신 것이다(2:10). 둘째, 이 선한 일에는 사랑하라는 일반적인 명령(4:15; 5:2, 25)뿐 아니라, 따라야 할 도덕적인 일 및 피해야 할 부도덕한 일도 포함된다(4:17∼5:20). 이런 도덕적인 명령이 적대감을 조장시키는 것이라면 이방인인 에베소 교인들은 또 다른 분리의 벽을 세웠다는 말이 된다. 셋째, 매우 의미 있게도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째 계명은 장수의 약속이 부가된, 지속적으로 유효한 원칙으로 언급된다(6:2, 3). 유대교의 높은 도덕적 표준 때문에 유대교에 이끌린 이방인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

에베소서 2:15이 율법의 도덕적 측면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그 율법은 어떤 율법인가? 바울이 언급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들을 분리시킨 것과 관계있는 법이다.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자신들을 눈에 띄게 분리시킨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중 하나가 의식법이 규정한 매일 드리는 제사와 함께 성전 봉사 및 후에 부가된 유대인의 규정들이었는데, 바로 그것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매우 분명하게 구별지었다.
일단의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모를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생각하여 예루살렘에서 소동을 일으킨 사실에 그런 면이 나타나 있다(행 21:28∼29). 이방인들은 부정하다고 간주되었으므로 이런 행위로 성전이 더럽혀졌다고 생각되었다(10:28). 드로비모와 관련된 바울의 경험은 1871년에 발굴된 한 명각으로 인해 더 밝히 드러났다. 그 명각은 이방인의 뜰과 유대인의 뜰 사이에 분리의 벽을 구분 짓고, 거기를 넘어가는 이방인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에 대한 적대감정의 근원이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 것은 사실이다(출 19:5, 6; 왕상 8:53). 다양한 규정들이 이런 구별 의식을 지속시켰는데, 그중 하나가 할례 법이었다. 에베소서 2:11에서 바울은 할례가 분리를 조장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할례 받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경멸적으로 지칭하기 위해서 “무할례”라는 말을 사용한 방식과 관련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그들이 다 같이 이방인도 유대인도 아닌 새사람을 이루기 때문이다(2:15). 고린도전서 7:19에서 바울은 할례나 무할례나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참조 갈 6:15).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구약의 의식법이 이스라엘과 다른 민족을 분리시켰고 유대법이 융성하던 구‧신약 중간시대의 유대 문헌에는 분리의 개념이 강조되었다(참조 막 7:2∼5).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 및 그 후손들은 다시는 그런 포로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여 주변의 우상숭배적인 이교 문화의 영향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분리의 벽을 강화시킨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춰 볼 때, 에베소서에서 폐지된 법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 소속되는 것을 어렵게 만든 의식법 및 기타 법적 규정들을 말한다. 이런 분리의 장벽이 구약의 의식법 체계의 완성이며 “원수된 것”(2:16)을 끝장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제거됨으로써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2:15).

Ivan Blaz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