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이에도 권력이 존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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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내에도 권력이 존재할까요?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들이 올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정 내 규칙을 정하고 규제합니다. 가정에서의 일상적인 규칙은 자녀들의 행동반경과 활동을 조절하며, 이를 통해 자녀들에게 권력을 행사합니다. 예를 들어 취침 시간, 숙제 완료, 가족 모임 참석 등의 규칙은 부모의 권한으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또 부모들은 가정 내 역할을 분담하고 학교 선택이나 진로 결정, 가족 휴가 일정 등 가족 내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의견 차이를 관리하고 조정하며 해결할 책임을 가집니다. 자녀는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게 되는데 이것은 가족 권력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힘이 성장함에 따라 그 권력관계가 이동하기도 합니다.

가족 권력이 변화할 때
가족 권력 내에는 부부 권력, 부모 권력, 형제 권력, 친족 권력이 있습니다. 권력의 기반은 권력의 원천을 의미하는데 경제적 자원일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주 수입원이 누구인가가 가족 권력을 장악하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음 이야기는 경제 활동을 시작하게 된 아내가 가정 내 권력을 갖게 됨으로 벌어진 일입니다. 남편의 사업이 잘될 때에는 전업주부로 지내던 아내가 남편의 사업이 기울어지자 자녀들의 공부 뒷바라지를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억척같은 아내는 열심히 일하여 어느덧 남편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자라 왔으며 가족보다는 친척, 언제나 남을 더 챙기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는 돈을 벌기 시작하자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아내 보기를 자기 집 강아지만도 못하게 생각했던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어느새 보복 심리로 작용해 남편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경제적 무능함에 화가 난 아내는 남편과 크게 다투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딸이 “엄마, 제발 좀 그만해! 아빠 좀 참아 주면 안 돼? 아빠가 그동안 우리를 위해서 일했던 것 다 잊었어? 내가 말 안 들었을 때 엄마가 나 밉다고 베란다에 가두었던 것 지금도 생생하게 다 기억나. 그런데 난 그때 엄마가 왜 나한테 그랬냐고 따지지 않잖아? 엄마 다 용서했다고! 그러니까 엄마도 아빠 좀 용서해 주면 안 돼?”라고 울먹이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변한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했습니다. 가족과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낸 그녀는 남편도 밉고 아이들에게도 미안스러워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어찌할 줄 모르던 그녀가 제가 몇 년 전 봉사하던 새로남쉼터로 초대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랑연습장인 가정’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녀는 크게 감동을 받아 가족 모두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남편은 제게 다음과 같은 카톡을 보내 주었습니다.

내 아내가 오늘 이 순간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감사한지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어요! 우리 둘이 이제 예수라는 공통분모 속에 함께 머무르고 생각과 목표가 하나가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각자 서로 허물을 들춰내고 상처를 내서 남보다도 못한 관계였지만, 이제는 하나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모릅니다. 오늘 저녁 너무 감격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네요!

건강한 권력 행사 방식
이 사례에서 알게 되었듯이 실상 사랑보다 더 위대한 권력은 없습니다. 가족 내에서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을 보면 그 가족이 건강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토론과 합의를 통해 민주적인 권력 행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가족 권력이 일부에게 집중되어 버리면 일방적이고 통제적인 방식으로 권력이 행사되어 가족 구성원은 서로의 눈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 권력 구조를 갖고 계신가요?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럼 이번 주말 외식할 때 누구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지 살펴보세요.
   이번 방학에 휴가 계획을 세우면서 행선지 결정은 누가 했나요? 대충 답이 나오시죠?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점 아빠와 대화를 안 하려고 한다고 고민하는 부모가 상담실에 오셨습니다.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외식도 계획하고 휴가 계획도 세웠지만 아이들과 아내가 자신을 잘 안 따라 준다는 것이 아버지의 불만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대답이 듣고 싶었던 그 아버지께 이런 질문을 드렸습니다. “아버님, 무엇이 먹고 싶은지 자녀들에게 물어보셨어요? 어디에 놀러 가고 싶은지 아내에게 물어보셨나요?” 대답은 아내로부터 나왔습니다. “언제나 이 사람 마음대로 하죠! 자기가 먹고 싶은 데로 가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겸연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래서 애들이 안 따라오나?” 하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상담실에 오는 많은 부모는 “우리 애는 지독히도 말을 안 들어요.”라고 호소합니다. 그런데 그 말은 “난 내 아이들 말을 그동안 정말 안 들어줬어요.”라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많은 부모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권력이 행사되는 가정
올바른 가정 내 권력은 가족 구성원 간의 상호 존중과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합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부모는 자녀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며, 자녀 역시 부모를 존중하고 그들의 권한을 인정해야 합니다. 또 가정은 각 구성원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고, 이에 대해 지지와 이해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최초로 공감과 유대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권력이 행사되는 가정이야말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전영숙
서중한합회 가정봉사부장, 가정 문제 상담사

2024 가정과 건강 2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