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다니엘 6장 (2) 다니엘은 왜 창문을 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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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알고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이라는 표현으로 보아서 다니엘은 정적들이 그를 제거하고자 법령을 세웠던 자리에 같이 있었거나 적어도 그 소식을 바로 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 모략을 막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나이가 80세 정도였을 다니엘은 자기를 죽이기 위해 온 조정이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혼자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사실 그의 생애는 시련의 연속이었고 바람 잘 날이 없었으며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니엘은 자신이 받는 시련이나 죽음의 위협에 대해 별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 앞에서 그들이 보도록 창문을 열고 기도함으로 다니엘은 하늘과 자기의 관계가 단절된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선지자와 왕, 542).

꼭 창문을 열어야만 했나

그런데 다 보이도록 꼭 창문을 열고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것만이 다니엘의 믿음이 문제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이었을까요? 창문을 닫고 은밀하게 기도하는 일은 믿음이 없는 행동인 걸까요?

이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시점에서 다니엘이 창문을 열고 정적들에게 그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한 것은 다분히 어떤 중요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이런 의도에는 어떤 목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니엘은 지금 얼마 있으면 다시 회복될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다니엘의 대적들을 격동시켜 다니엘을 죽임으로 그 일을 막으려고 했지만, 다니엘은 예루살렘이 회복되리라는 응답을 받았기에 아무런 동요도 없습니다. 이 핍박이 단지 자기 거취의 문제라면 다니엘은 그렇게 요란을 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칠십 년이 차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될 시기가 가까이 오고 있었기에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그 귀환하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은 다리오 왕 및 고레스 왕에게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28절).

기도)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 나의 삶의 결정을 좌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