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질투는 언제나 불충하고 악한 사람을 향한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 당신의 백성과의 배타적 관계와 유익을 위하는 의로운 열정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으로 히브리어로 엘 라훔(el raḥum, 신 4:31)이다. “엘”은 ‘하나님’을 의미하며, 라훔은 자비(raḥum)를 뜻하는 어근의 다른 형태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운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질투하는 하나님, 엘 카나(el qana’)이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신 4:24, 신 6:15, 수 24:19, 나 1:2 참조).
고린도전서 13:4은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한다고 선포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 고린도후서 11:2을 읽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불충실했던 모습을 생각해 보라(시 78:58 참조). 이 구절은 하나님의 “질투”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하나님의 “질투”는 종종 오해받는다. 누군가에 대해 “질투심이 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은 아닐 것이다. 질투는 많은 언어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질투에는 부정적인 의미가 없다. 그것은 아내와의 온전하고 배타적인 사랑의 관계를 바라는 남편의 간절하고 진실한 열정을 뜻한다.
사랑과 반대되는 질투가 있지만(고전 13:4), 고린도후서 11:2에 따르면 선하고 정당한 “질투”도 있다. 바울은 이를 “하나님의 열심(질투)”이라고 말한다(고후 11:2). 하나님의 질투는 오직 그리고 언제나 의로운 것이며, 이는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열렬한 사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qana’)은 그들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온전한 관계를 원하시며, 오직 당신만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종종 거절당하는, 일방적인 사랑으로 묘사된다(호 1-3, 렘 2:2, 렘 3:1-12 참조).
(이어서) 따라서 하나님의 “질투”와 “열심”은 결코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으며 언제나 불충하고 악한 사람을 향한다. 그것은 인간의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 하나님의 열심(질투)이다. 하나님의 질투는 결코 시기심이 아니며 항상 당신의 백성과의 온전한 관계와 그들의 유익을 위하는 정당하고, 진실한 열정이다.
<교훈> 하나님의 질투는 언제나 불충하고 악한 사람을 향한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 당신의 백성과의 배타적 관계와 유익을 위하는 의로운 열정이다.
<묵상>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셨기에 우리에게 질투하신다고까지 표현하시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어떻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과 같은 선한 ‘질투’를 다른 사람을 향해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질투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경홀히 여김 받지 않으신다.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께서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환경에 처하게 하시고, 그들이 사는 시대와 처한 상황에 상응한 특별한 의무와 이행 사항들을 그들에게 요구하기를 기뻐하실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빛을 바로 평가할 것 같으면 그들의 재능은 크게 확대되고 고상해질 것이며, 더 넓은 진리에 대한 시야가 그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교회증언 5권, 300).
<기도>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시기 위해 열심을 내는 하나님의 깊고 온전한 사랑에 감사합니다. 사랑과 열정을 원하지만, 저희는 온전하지 못하여 실수와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도와주셔서 주님 뜻을 따라 행하도록 참사랑과 지혜를 더해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