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에스겔 42장 구별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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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같이 그 사방을 측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길이가 오백 척이며 너비가 오백 척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겔 42:20).

구별

‘놋같이 빛난 사람’은 성전의 가장자리 사방의 담 전체를 측량했는데, 그 담은 동서남북 길이가 같은 정사각형으로 길이가 각각 오백 척(약 250미터)이었습니다(15~20절). 그리고 이 측량한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20절). 이 구별은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에서 강조된 메시지였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이 구별에 실패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떠나게 되었고, 결국 그것은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의 파괴로 이어졌습니다.

에스겔의 메시지를 통해 소망을 발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궁전에서도 뜻을 정해 속된 것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은 다니엘처럼,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가능성

에스겔이 본 성전은 실제로는 건축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번제단이 있고(겔 43:13~27) 실제로 번제를 드리라고 한 기록을 보면(겔 43:24)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늘 성전과는 분명히 다른 성전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지은 성전과도 분명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에스겔이 본 성전은 그저 이스라엘에게 헛된 희망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과장된 제스처였을까요?

저는 에스겔이 본 이 성전은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이해합니다. 바벨론에서 살던 하나님 백성이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된 70년 기간을 받아들이고 유대 땅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다면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세우실 가능성이 있었던 성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다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성전이 보여주신 그대로 이 땅에 구현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에게도 큰 도전을 던집니다. 우리 각 사람, 지역 교회와 한국 재림교회 혹은 세계 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과 예언의 신을 펴서 보면 그 가능성이 정말로 큰 규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이 주신 그 가능성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겠지만, 인간의 불신과 불순종은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의 규모에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구별된 삶에 넉넉히 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