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애 1:1).
전에는, 이제는
슬프다(히, 에카)로 이 애가(哀歌)는 시작합니다.
슬픈 이유는, 전에는 예루살렘성에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성이 적막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많은 나라 중에 공주였던 성이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처럼 되었기 때문입니다(1절). 전에는 사랑하던 자들이 이제는 위로하지 않기 때문이고, 전에는 친구였던 자들이 이제는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2절). 전에는 절기를 지키는 자들이 길에 가득했는데 이제는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기에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하고 제사장들이 탄식하고 처녀들이 근심하기 때문입니다(4절).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갔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이제 환난과 고통만 남았고 이전의 모든 즐거움은 기억에만 있습니다(6, 7절).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예루살렘성]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한 것이 그 대적들과 원수들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성을 곤고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예레미야는 고백합니다(5절).
언제나 고백에는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고통이 하나님한테서 왔다면 희망도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나[예루살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9절)라고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보시옵소서
희망을 발견한 예레미야는 이제까지의 3인칭 진술에서 돌이켜 12절부터 1인칭 시점으로 노래합니다. 이제 민족의 죄악은 자신의 죄악이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고백과 기도는 민족을 위한 고백과 기도가 될 것입니다.
이제 예레미야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넘기셨도다”(14절)라고 말하며 자신 곧 자기 민족은 감당할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의로우십니다(18절). 의로우신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자신이 환난을 당하고 마음이 상하고 자신의 반역이 크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두고 보시기만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20절).
저는 이 모습에서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인류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보시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기도)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