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은 세상의 빛이신 그분에 대해 설명한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지만, 지도자들은 이를 거부하는 영적 어두움 가운데 있다.
요한복음 9:17-34을 읽어 보라. 지도자들은 어떤 질문을 했고, 눈먼 사람은 어떻게 대답했는가?
요한복음 9장의 이 본문은 요한복음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이 무대의 주인공이 아닌 부분이지만, 토론의 주제가 예수님인 것은 분명하다. 죄에 대한 질문으로 이야기가 시작한 것처럼(요 9:2),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기 때문에(요 9:16, 24) 죄인이라 여기고,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는 “온전히 죄 가운데서” 태어난 자라고 비방한다(요 9:34).
흥미로운 반전이 일어난다. 눈먼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감사가 커지고 그분을 더욱 굳게 믿으면서 육체적으로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점점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요 9:16), 다음에는 예수님이 어디에서 오셨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 것에 이어 예수님에 대해 점점 더 보지 못하게 된다(요 9:29).
한편, 요한은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말할 기회를 얻는다. 요한복음 9장에 기록된 이 표적의 주제는 복음서의 다른 여러 주제와 교차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심을 다시 확인한다(요 9:5, 요 8:12 비교). 이 본문은 또한 예수님의 신비한 기원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그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그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9:12, 29; 요 1:14 비교)
이전의 기적 이야기에서 언급된 모세의 모습이 이 장에 다시 나타난다(요 9:28, 29; 요 5:45, 46, 요 6:32 비교).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반응이라는 주제도 있다. 어떤 이들은 빛보다 어둠을 사랑하지만,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반응한다(요 9:16-18, 35-41, 요 1:9-16, 3:16-21, 6:60-71 비교).
이 대목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영적 어두움이다.
(이어서) 한때 눈먼 자였던 거지가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요 9:32, 33)라고 선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영적 지도자이자 가장 먼저 예수를 알아보고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여야 할 종교 지도자들은 모든 강력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 자신을 어떻게 속일 수 있는지에 대한 얼마나 강력한 경고인가!
<교훈> 요한복음 9장은 세상의 빛이신 그분에 대해 설명한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하지만, 지도자들은 이를 거부하는 영적 어두움 가운데 있다.
<묵상> 고린도전서 1:26-29을 읽어 보십시오. 이 구절에서 바울이 기록한 내용이 본문의 기록과 어떻게 일치합니까?
<적용> 그 같은 원리가 오늘날에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습니까? 성경과 학문을 연구하면서 그 말씀의 교훈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소경이면 죄가 없으리라 – “소경에게 육체적, 영적 시력을 모두 주신 하나님의 능력의 현현은 바리새인들을 더욱 깊은 흑암에 남겨 두었다.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리라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진리를 볼 수 없게 하셨다면 그대들의 무식은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본다고 하니.’ …그런 까닭에 그들은 그들 자신의 죄의 탓인 우매함에 빠졌다. 예수께서는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시대의 소망. 475).
<기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진리를 더 분명히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지식 속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는지 보게 해주옵소서. 하루를 살면서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 뜻과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