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예레미야 12장 선지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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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 12:1).

하나님과 변론하자는 선지자

예레미야는 변론하자며 주님께 항변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악한 백성들에게 심판과 징벌을 말씀하시지만 그들은 여전히 잘살고 있으며,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선지자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그들을 끌어내어 죽일 날을 위해 조속히 구별하옵소서’라고 탄식합니다(3절).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5절)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말은 지금 예레미야가 겪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하나님의 책망 어린 대답입니다. 선지자가 지금 사람과 경주하면서도 힘들어하면 나중에 진짜 말과 경주하게 되면 어찌하겠냐는 말씀입니다. 유다가 평안할 때도 그가 이렇게 힘들어한다면, 바벨론이 감당하지 못할 공격을 해올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반어적으로 물으시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가족과 형제들을 믿지 말라며 사람 간의 유대를 포기하고 인간의 배신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6절). 선지자의 길은 진실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이 없다면 따를 수 없는 길인 것 같습니다.

분노 중에도 드러나는 사랑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집과 소유인 유다 백성을 원수의 손에 붙이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런데 심판의 암울한 메시지 속에서도 하나님은 구원의 소망을 보여주십니다. 반역하는 유다 백성을 “내 집”, “내 소유”,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7절)이라고 계속 언급하십니다. 악한 나무를 뽑아내신 하나님은 그 땅에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심으실 것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각 사람을 그들의 기업으로, 그 땅으로 다시 인도하실 것입니다(15절).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이 바알을 섬겼던 것처럼 열성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16절). 지금 말로 하자면,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매우 슬픈 명령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애달픈 명령도 마다하지 않고 하십니다.

선지자에게는 그토록 매몰차신 분이 반역한 백성에게는 애달프게 매어 달립니다. 그런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그분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이 선지자이며, 그러한 그분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자세가 선지자가 취해야 하는 진정한 자세로 보입니다.

기도) 선지자로 부르지도 마시고, 반역하는 백성처럼 살지도 말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