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행할 것이라”(렘 4:12).
하나님께 돌아갈 필요가 있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내게로 돌아오라”(1절)라고 하십니다. 가증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 외의 다른 것으로 인해 흔들리지 말고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라고 말씀하십니다(1, 2절).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표면적인 회개가 아닙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는 것과 같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회개와 변화를 원하십니다. 몸에 받는 할례로 끝나지 않고 마음까지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호소하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회개한다고 할지라도 유다 나라가 이방 나라에게 승리할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이전에 여호사밧과 히스기야 때는 하나님의 전적인 간여하심으로 승리했는데 이제는 그런 약속이 없습니다. 회개해도 이 나라는 멸망과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선지자의 탄식, 그리고 희망?
예레미야는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19절)라고 탄식합니다. 여인의 해산하며 고통하는 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주님은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27절)이라며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는 소수의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희망의 말씀을 전하십니다(14절).
그러고 보니 소돔에서 겨우 구원받은 롯이 떠오르고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기억납니다(슥 3:2). 참으로 주님은 여호수아의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혀 주셨습니다(슥 3:4). 이런 사실은 완전한 절망이란 없을 것임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 주님은 희망과 소망의 주님이심을 말해줍니다.
저는 예레미야서를 읽기 전에 이사야서를 먼저 읽은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사야서를 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멸망해 포로로 끌려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 징벌의 기한이 차면 반드시 돌아오게 하실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기에 예레미야서에서도 소망의 약속의 성취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 우리에게 닥칠 미래도 지구의 완전한 멸망입니다. 이 운명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멸망 뒤에 구원이 있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 탄식 중에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