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 10:2).
무슨 까닭이신지요?
자신이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다고 말했던 욥은, 그래도 하나님께 아뢰는 일을 그치지 않습니다. 자기 영혼이 죽고 싶을 정도로 곤비하여 불평을 토로하고 괴로움을 말할 수밖에 없지만, 다른 곳으로 갈 수는 없고 하나님께 아뢰고 싶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정죄만 하지 마시고 무슨 까닭으로 그러시는지 하나님과 변론하고 싶다고 욥은 간청합니다(1, 2절).
우리도 욥처럼, 왜 하필이면 우리에게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 까닭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으로 팔려 갈 때 하나님에게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 나서 미디안으로 도망가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 긴 시간을 광야에서 왜 보내야 했는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니엘도 자신이 왜 바벨론 왕궁으로 끌려가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는지 하나님에게서 어떤 구체적인 이유를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들 모두는 하나님께 순종의 생활하면서, 그 이해할 수 없었던 기간이 자신들의 신앙적 성숙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과정이었으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주의 손에 맡기다
욥은 주님이 무슨 까닭으로 이런 재난을 허락하시는지 알 수 없다고 불평했고, 실제로 하나님에게서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며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욥은 우리처럼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중보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는데도 그는 하나님께 아뢰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욥은 그러한 이유를 자신은 토기장이의 그릇처럼 주님이 빚으시고 만드신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3, 8, 9절). 욥은 주의 손(3, 7, 8절)이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사용하며, 주의 손으로 빚으신 자신을 멸하거나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냐고 의문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토로하는 욥에게, 하나님은 설명을 바로 해주지는 않으셨지만, 욥을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욥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쳐야했지만, 주님의 손에 자신을 여전히 맡겼고 주님은 다시 그를 빚어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를 빚어 창조하신 주님은 우리의 지금 인생도 다시 빚어주실 수 있으십니다.
기도) 주님의 손에 저의 인생을 맡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