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동성애를 정죄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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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바울은 동성애를 정죄했는가?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6, 27).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이 동성애를 말하고 있으며 모든 형태의 동성애를 죄로 여겨 정죄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이 구절이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여기서는 우상숭배와 남색만을 문제 삼고 있을 따름이고 바울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성적인 성향들에 대해선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더욱이, 어떤 이는 본문의 “순리”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동성애를 “역리”라는 말로 묘사할 때 동성애적 성향이나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관계를 정죄하고 있지 않다. 그 대신 그는 순리대로 쓸 것을 역리로 쓰는 것을 정죄한다. 이를테면, 동성애자가 이성애를 하거나 이성애자가 동성애를 하는 것은 “역리”이다. 바울은 동성애자로 태어난 것 때문에 그 사람을 정죄하거나 동성애적 성향(성이 전환됨) 때문에 정죄하지 않는다.(1)

그러나 로마서 1:26, 27에서 문제는 바울이 동성애를 논하면서 그것을 죄라고 말하는지에 있지 않다. 그에게 동성애가 죄인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여기서 문제의 관건은 로마서 1장에서 말하는 동성애가 온갖 형태의 동성애를 다 포함하는지 아닌지를 이해하는 데 있다.

바울 시대의 동성애:

고대인들은 소위 “일시적인 동성애자”(실제로는 동성애자가 아닌데 여러 이유로 이성에 대해 싫증을 느낀 나머지 일시적으로 동성과 어울리는 십대나 성인들을 말함)나 “상황에 따른 동성애자”(이성과 만날 기회가 없어서 동성애적 행위에 의존하는 사람)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질적인 동성애자”(영구적으로 어떤 사람의 기질 속에 타고난 동성애자)에 대한 어떤 개념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타고난 기질 때문에 어떤 사람이 동성에 이끌린다는 개념은 플라톤의 양면 인간의 신화에 나타난다.

이 신화에서 플라톤은 원시의 인간은 양면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인간은 네 손과 네 발, 두 얼굴 그리고 두 개의 은밀한 곳을 지니고 있었고,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얼굴은 각각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형상이었다. 이런 양면적인 원시 피조물의 어떤 것은 양쪽 다 남성이었고 어떤 것은 양쪽 다 여성이었지만, 제3의 성을 가진 다른 것들은 한쪽은 남성이고 다른 쪽은 여성이었다. 이 원시적 피조물은 힘이 강하여, 오만하게도 신들을 공격하였다. 그들이 오만한 행동을 계속하자 제우스는 이 양면적인 네 다리 피조물을 두 쪽으로 쪼갰다. 말하자면 양쪽이 남성인 피조물은 두 남자가 되었고 양쪽 다 여성인 피조물은 두 여자가 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이 합해진 피조물은 남자와 여자가 되었다. 피조물들은 각각 원래의 성향에 따라 같은 성을 찾든지 반대 성을 찾게 되었고, 플라톤은 이에 근거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성에 대한 욕구를 설명했다. 원래 양쪽을 이루었던 부분들이 만나면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런 신화를 만들어내서, 플라톤은 어떤 남녀들이 같은 성을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것을 설명하고자 했다.(2)

바울처럼 유식하고 헬라 작가들까지 인용한 사람(참조 행 17:28; 딛 1:12)이 플라톤의 신화나 기질적으로 타고난 동성애적 성향의 개념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그 당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평생 한 짝과만 사랑어린 관계를 유지하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완력을 사용하여 상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동성애자나 남색만을 바울이 가리키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견해를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A. C. 씨셀턴(A. C. Thiselton)은 이렇게 말한다. “바울은 주변에서 권력과 돈을 이용한 학대적인 관계뿐 아니라 남성 사이의 ‘진정한 사랑’의 본보기도 목격하였다. 우리는 바울이 가진 세상 지식에 대해 오해해서는 안 된다.”(3)

바울의 진술의 보편적인 성격:
로마서 1:26, 27의 문맥은 보편적인 현상에 대해서 말한다. 로마서 1장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이 모두 죄인임을 보이고 그들의 악의 목록을 제시한다(롬 1:21:32). 그것을 보고 유대인 청중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냈을 것이지만 이제 바울은 로마서 2장에서 유대인들 역시 죄인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로마서 3장에서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므로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돼 있다고 결론짓는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죄의 종이었으나 예수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상세히 설명한다(6:18). 바울의 논증은 AD 1세기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동성애를 포함하는 악의 목록도 특정 시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바울이 다양한 형태의 동성애를 구분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그는 모든 경우의 동성간 성관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동성애와 하나님의 창조:
문맥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진노”(헬라어 오르게 쎄우)라는 구절에서 하나님께 적용된 “진노”는 인간의 격정에 비교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다른 성경의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여기서 인간의 언어에 더 적절한 단어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anthropomorphism)을 하나님께 적용했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이 죄를 철두철미 거부하시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한다.

바울의 용어 선택:
로마서 1:26, 27은, 그 결과가 수치스럽고 결국 자기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유 의지를 사용하도록 허용하셨다고 말한다. 레즈비언 동성애를 묘사한 후에 남색에 대해 말한다. 헬라어 크레시스(“쓸 것”)는 신약에서 로마서 1:26, 27에만 나온다. 따라서 이 단어는 로마서 1장의 문맥에 비추어 성적인 관계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32절의 마지막 부분은 이런 죄인들이 받을 보응에 대해 언급한다.
“순리대로 쓸 것”과 그것의 반대개념인 “역리”(롬 1:26, 27)라는 표현이 모두 개인에게는 순리적인 것을 말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어디서도 헬라어 퓌시스(“본성, 자연, 자연스런, 순리적인”)가 그런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로마서에 이 명사가 일곱 번 나타난다.(5) 하지만 파라 퓌신(“역리”)이라는 구절은 단 두 번 나온다(롬 1:26; 11:24). 로마서 11:24에서 바울은 “원 돌감람나무”를 언급하는데, 여기서 “원(原)”은 헬라어로 카타 퓌신이다. 가지가 이 돌감람나무에서 잘라내져서 “본성에 거스려”(파라 퓌신)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여졌다. 그러므로 “원” 즉 “원래”(카타 퓌신)라는 말은 창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파라 퓌신(“역리”)은 창조주가 의도한 질서에 반하는 것을 가리킨다.(6) 이런 이해는 로마서 1장의 문맥과 일치하는데, 창조가 우상숭배나 동성애 등의 악을 논하는 배경을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서 “역리”로 묘사된 행동이나 행습은 부정적인 측면의 도덕적 심판을 내포한다. “동성애적 행습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 자연의 질서를 어기는 것이다.”(7) 여기에는 온갖 형태의 동성애가 !
포함된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율법은 보편적인 것임:
바울은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진 지 1500년 후에 살았지만 도덕법이 신약 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된다고 여겼음이 분명하다. 27절에서 성인의 동성 간의 성관계를 언급한 것은 레위기 18, 20장에 근거한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약에는 언급돼지 않은 여성간의 성행위도 여기에 포함시킨다. J. B. 드 영(J. B. De Young)은 로마서 1장이 “보편적인 도덕법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유대인 정결법을 규정하고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정결법을 어긴 것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징벌에 회부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데,(8) 매우 통찰력 있다.
바울이 남성 간의 동성애에 레즈비언 동성애를 부가한 사실은 그가 모든 동성애적 관계를 죄로 여겼음을 지지한다. “고대에 레즈비언 성관계는 일반적으로 남성 간의 성교 형태와 같지 않았고, 종교 의식의 행위 즉 종교적 매춘 행위와도 관련이 없었다.“(9) 그것은 상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성적 착취가 없는 관심어린 동성 간의 관계도 로마서 1장에 언급된 죄에 포함되어야 한다.
바울이 강압적인 동성애 관계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음은 로마서 1:27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이러한 동성애적 성교에서 양 편은 서로에게 욕구를 가지고 있다. 양 편 모두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이 있고 양 편 모두 보응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간을 당했든 강제로 남성간 관계를 하게 되었든 동성애적 관계에서 강압적으로 여성 역을 맡게 된 소년을 징벌할 만큼 불공정한 분이 아니시다.
로마서 1장에서 동성애는 어떤 시대나 문화 또는 특정 동성애 형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편적인 상황을 말하는 로마서 1∼3장의 문맥은 동성애는 어떤 시대나 문화를 막론하고 죄된 행동임을 보여 준다.

제안: 논의된 본문은 모든 형태의 동성애가 죄임을 지적함으로써 그런 행위에 연루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이미 그런 것에 연루되었다면 그것을 포기하기를 촉구 받는다. 고린도전서 6:9∼11에서 바울은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그런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로마서 1장과 그것의 문맥은 그런 죄인들을 미워하고 멸시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라고 하진 않는다. 우리 모두는 죄를 지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제공된 구원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인간은 하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므로 그분이 보시기에 귀한 자녀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동성애자를 경멸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죄인은 사랑해야 하지만 우리 자신을 죄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우리는 동성애의 예방을 지원하고 또한 여러 면으로 동성애자들을 돌보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구원해 들이기 위해(고전 5:1∼5) 마태복음 8:15∼20에 묘사된 예수님의 권면을 따르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상에 맞게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을 지지한다. 또한 우리는 죄와 투쟁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들을 지원한다.(10)

Ekkehardt Mueller

<미주>

(1) James B. De Young, Homosexuality: Contemporary Claims Examined in the Light of the Bible and Other Ancient Literature and Law (Grand Rapids, MI: Kregel Publications, 2000), 10.
(2) Ronald M. Springett, Homosexuality in History and the Scriptures (Silver Spring, MD: Biblical Research Institute of the General Conference, 1988), 97, 98.
(3) Anthony C. Thiselton,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The 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0), 452.
(4) Dan O. Via and Robert A. J. Gagnon, Homosexuality and the Bible: Two Views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03), 78.
(5) 롬 1:26; 2:14, 27; 11:21, 24.
(6) 조셉 A. 피츠마이어(Joseph A. Fitzmyer)는 이렇게 제안한다. “…19∼23절의 문맥에서 ‘순리’ 역시 바울에게는 창조주가 의도한 질서 곧 하나님의 창조에 나타난 질서, 구체적으로 이 경우엔 남녀 상호간의 사랑의 표현뿐 아니라 자손의 번식을 위해서 제정된 성 기관의 기능에 나타난 질서를 나타낸다고 제안한다. 바울은 여기서 ‘역리’(파라 퓌신)라는 말로써 성 기관들을 비정상적으로 서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Romans, The Anchor Bible, vol. 33 [New York, NY: Doubleday, 1992], 286]).

(7) James D. G. Dunn, Roman 1∼8, Word Biblical Commentary 38A (Dallas, TX: Word Books, Publisher, 1988), 74.
(8) De Young, 159.
(9) Via and Gagnon, 80.
(10) “Seventh-day Adventist Position Statement on Homosexuality,” Statements, Guidelines and other documents (Silver Spring, MD: General Conference, 2005), 58을 참조하라. 이 성명서는 1999년 10월 3일 대총회 행정 위원회에서 결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