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이어 – 류대균: 교회에서도 설교를 녹화하고, 편집하고, 송출하는 모든 과정을 AI가 총괄한다. 사람이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깊은 AI는 아니겠지만, 정말 유용하다. 그런데 만약 비싼 AI는 얼마나 정확하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등장하는 고성능 AI는 얼마나 대단할까. 그런데 AI를 연구하고 개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류한철: AI가 학습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것이다.
류대균: 이것이 AI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유튜브를 볼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쩜 그렇게 정확하게 추천을 하는지… 이런 것도 AI가 하는 건가?
류한철: 맞다. AI 추천시스템이다.
류대균: 이런 경우 보면 AI가 나 스스로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데이터가 쌓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추천하는데 눈을 뗄 수가 없다.
송창호: 광고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광고를 하나 클릭해서 보고 나면 이후에 비슷한 광고가 연이어 뜬다.
류한철: 심지어 내가 구글에서 검색했는데, 페이스북에서 관련된 광고가 뜨기도 한다.
송창호: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가 생각난다. ‘인터넷이 사탄의 도구’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은 인터넷이 없으면 교회의 많은 일이 마비되는 상황이다. ChatGPT를 비롯한 AI가 등장했지만, 교회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나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교회의 미래는 조금 어둡다고 할까. ‘지금 이런 상태로 교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혹은 ‘신앙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라는 의문이 든다. 일선 교회에서 볼 때는 어떤가?
류대균: ‘ChatGPT다’ ‘AI다’ 말을 그렇게 해서 그렇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런 도전은 항상 있었다. 예를 들어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개신교 목회자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그 지성인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당신은 나보다 낫습니다. 당신에겐 영성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고민해 봤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이자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하지 못하는 성령의 능력이 있는 것이다. ChatGPT 논란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ChatGPT가 설교문을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ChatGPT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지 않나.
‘아무리 설교자의 언변이 좋고, 맞는 말을 하고, 대단한 이야기를 해도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한 사람도 회심시킬 수 없다’는 화잇 선지자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다. ChatGPT가 아무리 좋은 설교문을 쓴다 해도, 그에 담긴 지식이 아니라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느냐가 하나님 사업을 마치는 것 아니겠나. 그래서 더 갈급한 것은 주의 능력의 역사일 것이다. 신학 지식으로만 따지면 ChatGPT 보다도 마귀가 우월하지 않겠나.
송창호: 소위 우리가 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AI가 할 수 있고, 우리보다 더 잘할 것이다. AI가 다 대체하고, 다 깨져 버린다면 그것은 사실 물질적인 일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영으로 밖에 되지 않는 일이 남아 있지 않을까. 이어령 선생도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가 필요한 시기”라고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내가 다른 먼 곳에 있어도 홀로그램으로 여기서 설교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류한철: 그것은 된다. 기술적으로 당연히 되는 것이다.
송창호: 더군다나 내가 한국어로 설교하면 그 자리에서 영어로 통역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류한철: 그것도 이미 우리 곁에 온 세상이다.
송창호: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다른 많은 의미가 있겠지만 하나님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나. 인간에게 영혼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영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AI에게 영적인 면이 있을까. 영적인 행동과 표현은 할 수 있겠지만,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영적인 교감은 갖지 못하지 않을까.
권태건; 개신교 목회 컨퍼런스에 가보니 AI를 목회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하고, 자신이 어떻게 목회와 선교에 쓰고 있는지 보여주더라. 어떻게 하면 AI가 교회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류한철: 실은 내가 생각할 때 그런 부분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앞서 AI를 연구하는 것은 학습을 잘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연구에 관해 이야기하면, ‘범용 AI’의 개발은 아직 안 돼 있다. 그것을 따라하는 것이 ChatGPT다.
그런데 특정 분야를 잘하게 AI를 만드는 것은 아주 잘되고 있다.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를 모으고 학습하고 결과를 내는 것이 과정이다. 그렇다면 언제쯤 범용 AI가 나올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데, 그것이 강인공지능이고 그 다음에는 강인공지능이 자아를 갖는 것인데 언제일까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연구는 계속되고 계산 자원과 저장 공간은 계속 늘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의 인공지능이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인공지능이란 의미다. 조금 전 언급한 미래는 확정된 미래다. 홀로그램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동시통역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미래다.
영적인 것이 무엇인가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해답을 종교가 줘야 한다. ‘인간의 존재가치는 무엇이냐’ ‘이전까지 인간은 창의력을 갖고 있어’ ‘생각할 수 있어’라고 말했지만, 다 깨졌다. 육체적인 부분보다 우리가 생각한 고고한 가치가 먼저 깨졌다. 그래서 난 우리의 몸, 형상 그리고 이것과 연결된 신경, 상호작용 등에 더 관심이 쏠린다. 인간의 존재가 의미 있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송창호: AI시대 이전에 인간과 짐승의 다른 점이 종교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종교성으로 대표되는 영성이 인간의 존재 의미이지 않을까. 단지 표출되는 어떤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조금 있으면 우리는 AI와 함께 예배드릴지도 모른다. 영원을 사모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하는 일이 인간다움의 마지막이지 않을까.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