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어를 계속 공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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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배움의 끝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하는 모든 학문이 평생 교육이지만 나이 들어서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열심히 원내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2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한다.

올해로 해외 생활 11년째에 접어들었다. 인생의 가장 황금기인 30~40대를 해외에서 보내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언어로 인해 생긴 에피소드만 이야기해도 한나절로는 모자라지 않을까 싶다. 어떤 학문이든 마찬가지이나 특별히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한다고 해도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언어가 생기고 사라지고 있으니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원고를 쓰면서 문득 필자의 컴퓨터에 있는 자료들을 뒤적이다가 웃음을 자아내는 자료를 발견했다. ‘2024 Master plan’이라는 자료였는데 대학교 4학년 한참 혈기 왕성할 때 작성한 자료였다. 2024년까지 내가 이루어야 할 것들과 구체적인 목표들을 적어 놓았는데 그중 하나가 2024년까지 7개 국어를 마스터하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역사와 지리 등을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레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지금이야 영어 교육이 유치원 때부터 혹은 그전부터 시작되지만 필자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영어 교육을 하는 학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첫 수업이 abcd를 쓰고 읽는 것과 필기체 등을 가르쳐 주는 수업이었으니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독자들이 으레 짐작이 가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필자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사립 초등학교라 3학년부터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수업이 일주일에 몇 차례 진행되었다. 그 나이 또래에서는 영어 발음을 굴리고 최대한 원어민을 따라 하는 것이 친구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난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하고자 노력했다. 중학교 때도 노란 머리의 원어민 선생님의 발음을 따라 했고 고등학교 때는 친구 아버지 백으로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S어학원의 성인반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은 아주 재미있었는데 학교에서 하는 영어 수업은 왜 그리도 지루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입시 교육의 병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언어 정복의 시작
대학교 1학년 겨울 방학에 처음 해외여행을 간 곳은 영어권 국가인 필리핀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고 혼자 여행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만약 나의 20대 시절 유튜브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 나라 저 나라 여행하면서 콘텐츠를 찍는 유튜버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여행과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내 인생에서 큰 재미였다. 이런 외국어와 해외 생활에 대한 호기심은 군대를 마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해도 생활 영어 정도는 알아듣는다고 자부했는데 호주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해서 직원이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동안 어리둥절했다. “플리즈 고 디스 와이” ‘응? 디스 와이? 무슨 뜻이지?’ 잠시 생각하다 ‘아~~ ‘영국식 영어를 구사해서 a를 아로 발음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가면서 그제서야 안내를 따라갔던 기억이 난다. 호주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호주와 영국식 영어를 접하고 나니 정말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가 한참 자라던 찰나에 대학으로 복학을 하고 한동안 외국어와 손절하고 지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가 배우고 싶어서 일본어학원과 중국어학원에도 잠시 다녔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1단계만 몇 번 다니다 다른 언어와는 친해지지 못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공부했었던지라 일본어를 정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중국으로 일을 하러 가게 되면서 일본어가 아닌 중국어를 만나게 되었다.

또 다른 도전의 시작
한자는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수업으로 배운 정도가 다였던 내게 중국어는 큰 도전이었다. 지금 중국의 한자는 필자가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배운 한자와 다른 간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한자 쓰는 것도 다시 배워야 했다. 중국어는 공부해 보면 알겠지만 각기 다른 성조가 4개가 있어 같은 발음이어도 성조에 따라 완전 다른 뜻이 되기 때문에 30대 중반에 공부를 시작한 내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중국으로 이사를 간 뒤 2주 동안 짐 정리를 하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하러 밖에 나갔다. 중국어라고는 “워 아이 니.” 정도밖에 할 줄 몰랐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래도 과감하게 밖에 외식을 하러 나갔다. 결과는 중국어로만 되어 있는 메뉴판을 보며 머리가 아파 결국엔 한식당을 갔는데 한식당 메뉴판도 중국어여서 집에 돌아가서 라면을 끓여 먹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한번은 교회 어르신과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하는데 이 어른신께서 키득키득 웃으셨다.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왜 웃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아담’이라고 말한 발음이 이분에게는 ‘오리알’로 들렸던 거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가 ‘오리알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로 들렸을 테니 얼마나 재미있게 들렸겠는가? 30대 중반에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건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면서 그동안 책이나 인터넷으로만 알고 지내던 중국에 관한 사실들을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정서적으로도 사람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중국은 중공으로 불리었고 대만은 자유 중국으로 불리었으니 필자도 중국에 가기 전까지는 중국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우면서 그 나라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훨씬 많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늦은 나이에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나보다 적게는 5~6살, 많게는 15살 이상 차이 나는 10대 후반 20대 초반 학생들과 공부를 해야 하다 보니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했다. 나름 열심히 공부한 탓에 매 학기 장학금도 받았다. 중국어를 배운 지 두 달 만에 택시 기사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대화를 나누고, 중국어 배운 지 3개월 차 땐 출장 때문에 갔던 청도 공항에서 비행기가 지연되는 바람에 6·25 전쟁에 참전했다는 중국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6·25 전쟁을 주제로 열심히 대화를 나누었다. 덕분에 훗날 택시를 타면 중국어이긴 한데 뭔가 어색한 중국어로 인해서 대만 사람이냐? 홍콩 사람이냐? 중국 화교냐는 말은 들었어도 한국인이냐고 묻는 질문은 점점 사라져 갔다.
   중국 생활을 마치고 대만에서 몇 년 살 때는 지인의 부탁으로 대만의 유명하다는 약을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약국에 갔다. 지인이 부탁한 약 이름과 상표만 가지고 약국에 가서 그 약을 달라고 했는데 문득 그 약이 어디에 좋은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약이 유명하냐, 사람들이 많이 사 가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대뜸 약사가 하는 말이 “엄청 유명하다. 너네 나라에서 사람들이 와서 많이 사 간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약사에게 “너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말하냐?”라고 물으니 “너 중국 사람 아니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중국어를 잘해서 받은 칭찬인지 중국 사람처럼 보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대만에서 중국인으로 오해받았던 에피소드다. 대만에 처음 갔을 때는 대화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읽는 것 때문에 고생을 했다. 대만 중국어와 중국 중국어는 마치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와 같은 관계이기 때문에 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대만은 중국의 마오쩌둥 시대에 한자를 간편하게 바꾼 간체가 아닌 학교에서 우리가 배웠던 전통 중국 한자인 번체를 쓰기 때문에 익숙해진 간체를 버리고 번체를 다시 익히는 것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번체에도 슬슬 익숙해졌다.

평생 공부해도 못 끝내는 학문
이제 대만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여행 갔던 필리핀으로 왔다. 10년 동안 중화권에서 지내다 영어권에 오니 첫 3~4달은 영어와 중국어가 섞여서 나왔다. 그래도 중국어라는 외국어를 장착하고 나니 좋은 점은 전 세계 인구의 25%와 대화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다양한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문화를 접할 수 있고 심지어는 온라인 쇼핑도 더 다양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제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아이들과 중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는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외국어 배움의 필요성을 수시로 강조한다. 마치 내가 못 이룬 꿈을 아이들이 이루었음 하는 듯이 말이다. 지금 일하는 곳에도 은퇴하시고 연세가 70이 넘으신 분들이 종종 영어를 배우러 오신다. 노년에 영어를 배우러 오시는 분들을 뵈면 여기에 오시는 것 자체만으로 존경심이 자연스레 생긴다.
   모든 학문이 그렇겠지만 배움의 끝이 어디 있으랴? 우리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하는 모든 학문이 평생 교육이지만 나이 들어서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열심히 원내에서 공부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20년 뒤의 내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한다. 대학교 4학년 때 작성한 계획표대로라면 2024년의 나는 중국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일본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를 마스터해야만 한다. 이제 2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다. 새로운 계획표를 2044로 살짝 바꾸어 보면서 유튜브의 스페인어 강좌를 클릭해 본다.

백준
SDA 삼육외국어학원 필리핀 연수원장, 중국 항주 사범대학 교육학 석사

가정과 건강 12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