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너는 성막을 만들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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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 매 폭의 길이는 스물여덟 규빗, 너비는 네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출 26:1-2)

우리는 지금 성막 안에 있습니다. 밖에서는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지만, 금 등잔대의 등불로 환합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 보니, 가늘게 꼰 청색과 자색과 홍색과 흰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아름다운 휘장이 보입니다. 성막과 성막의 기구들이 예수를 표상하는 것처럼 성막을 덮은 이 휘장도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휘장의 <청색>은 하늘입니다. 예수께서 계시는 하늘입니다. <자색> 곧 보라색은 왕의 색입니다. 하늘에 계신 예수는 만왕의 왕이신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하늘로서 이 땅에 ‘한 아기’(사 9:6)로 내려와 십자가에 못 박혀 붉은 피를 흘리며 죽으셨습니다. <홍색> 실은 바로 그 피의 색입니다. 십자가에서 그 붉은 피를 흘리심으로 주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히셨습니다. 희고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흰색>은 바로 그 의를 예표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속의 사역, 곧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 구속의 사역을 성막 천장의 휘장으로 나타내고 계신 것입니다. 그 구속의 사역을 금 등잔대의 일곱 등잔이 비추고 있으니 그 아름다움이 눈부시게 황홀하기만 합니다.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황홀했으면 다윗의 소원이 ‘여호와의 아름다움’(시 27:4)이었을까요?

그런데, 이 아름다움 곧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오직 성막 안에서만 볼 수 있었습니다. 성막 밖에 머물러 있으면 보이는 것이라곤 그저 거무튀튀한 해달 가죽 뿐입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흠모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거무튀튀한 해달 가죽만을 볼 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머물면 우리는 그저 해달 가죽만을 보게 됩니다. 눈부시게 찬란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볼품없는 그 해달 가죽 밑에 있으니, 성막 안으로 들어와야만,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야만,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앞서가신 예수’(히 6:20)를 따라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믿음으로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번제단을 지나 물두멍을 지나 그리고 회막 문을 지나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거무튀튀 볼품없는 해달 가죽보다도 더 형편이 없다고 느껴질 때는 성막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하지 말고 믿음으로 성막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 앞서가셨으니, 우리는 오직 앞서 가신 주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가면 아름다우신 우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의 아름다우심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말로 형용못 할 그 아름다움에 우리로 기뻐 뛰며 찬양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일어나 성소로 갑니다. 우리 앞서가신 우리 주님을 따라 성막 안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성소’(렘 17:12)이신 예수께로 갑니다. 오직 예수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