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매주 수요일, 체육관 앞에는 장터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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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대학교회 도르가회는 매주 수요일 ‘장학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를 연다. 지금까지 기탁한 누적 장학금이 무려 6억원에 이른다.
“와~ 채소가 참 싱싱하고 좋네요. 정말 맛있겠어요”
“한약재를 비료로 쓴 유기농 배추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지난번에 그 고구마 없어요? 정말 맛있던데…”  
“이따 오후에는 물건이 다 떨어져 사고 싶어도 못 사요”  
“여기 참기름 하나 주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여느 장터에서 오가는 대화 그대로다. 그런데, 사실 장터는 아니다. 뭐랄까. 장터인 듯 장터 아닌, 장터 같은 곳이다. 삼육대학교회 도르가회(회장 유영환)가 매주 수요일 교내 체육관 앞에서 펼치는 ‘장학기금 마련 수요바자회’의 모습이다.

진열대에는 배추, 열무, 무 등 김장거리와 브로콜리, 비트, 상추 등 갖은 채소가 한가득이다. 단감, 사과, 바나나 등 새콤달콤한 제철 과일과 고소한 견과류도 손님을 기다린다. 참기름과 들기름도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자리를 잡았다. 방앗간에서 금방 가져온 현미가래떡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몸에 좋은 통밀빵도 뜨끈하다. 재래식 김, 다시마 등 해조류와 강원도 정선까지 가 직접 떼어왔다는 천연꿀과 동물복지 달걀도 눈길이 머문다.

얼마 전, 며느리가 아이를 낳아 미역을 사러 왔다는 시어머니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었고, 체육관의 수영교실을 마치고 나온 한 중년여성은 “매주 수요일만 기다린다”며 항산화주스와 포도즙을 장바구니에 한껏 챙겼다. 바빠서 마트 갈 시간이 없었다는 한 직원은 짬을 내 주말 반찬거리를 사러 왔다. 이들은 “믿고 살 수 있는 제품에 가격도 싸고, 게다가 수익금이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기부된다니 일석삼조”라며 “소비자로서는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푸근하고 넉넉한 인심은 덤이다.

장터를 여는 도르가회는 삼육대학교회 성도들이 운영하는 지역사회 봉사단체다. 일평생 이웃을 위해 구제와 선행으로 헌신한 성경 속 인물 ‘도르가’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역사회에 다양한 구제와 봉사의 손길을 펼친 지 벌써 60년이 넘는다.


현장 – 매주 수요일, 체육관 앞에는 장터가 선다

1960년대 당시 송권 교수의 아내와 몇몇 회원들이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게 계기였다. 한때는 젖소를 사서 키우기도 했다. 지금도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교수와 교직원 아내들이 참여해 일손을 거든다. 매주 수요일 오전 9시에 문을 열어 오후 4시까지 운영하는데, 방학 기간에는 문을 닫는다.

봉사자들은 직접 농수산 도매시장에 가서 물건에 떼어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손수 발품을 팔아 지방의 재림농가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작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 일을 위해 새벽댓바람을 뚫고 멀리 양평에서 오는 이도 있고, 무릎관절이 안 좋아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없으면서도 거르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

재정을 아끼기 위해 손수 도시락을 싸 와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고, 정신없이 바쁠 때는 그마저도 거를 때가 있다. 기자가 현장을 찾았던 날도 밀려드는 손님에 어찌나 바쁜지 봉사자들이 함께 모여 사진 찍을 시간도 없었다. 하필 올 가을 들어 제일 추운 날이라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입김이 나고, 손이 얼고, 발이 시리지만, 아랑곳 않는다. 무거운 물건을 손수 들고 나르다보면 삭신이 쑤시기 일쑤지만, 보람으로 감수한다. 오히려 장학금 규모가 너무 적어 미안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렇게 모아 학교에 기탁한 장학금이 지금까지 약 6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만 약 9000만 원의 자금을 기탁했으며, 얼마 전에도 4000만 원을 모아 김일목 총장에게 전달했다. 집계를 시작한 2001년부터 현재까지 832명의 학생이 수혜를 입었다.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학과 추천으로 선발해 한 해 50명에게 소정의 장학기금을 지급한다.  

시골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은 생산자에게는 직거래 판로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질 좋은 농산물과 믿을 수 있는 가공품을 좀 더 싼 가격에 공급하고, 수익금은 학업 지원을 위한 장학금으로 환원하는 선순환이 사이클을 이루는 것이다. 장학사업 외에도 무의탁 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돕거나 요양원, 양로원, 교도소 등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별도의 회비를 걷거나 뜻을 같이하는 독지가들의 후원을 받는다.


현장 – 매주 수요일, 체육관 앞에는 장터가 선다

회장 유영환 사모(장병호 교수 妻)는 “주변에서는 우리 보고 고생한다고 하는데,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하다. 총장님 이하 모든 교수님과 교직원들이 전적으로 지지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다. 이 기금이 어려운 학생을 돕고, 사회에 기여하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소중히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1988년부터 봉사했다는 김효신 사모(전한봉 목사 妻)는 “날씨가 춥고 힘들어도 다른 분들과 함께 하니 더 좋다. 나누고 봉사하는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뿌듯함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도르가 장학금을 받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며 찾아와 인사하는 졸업생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뭉클하다”고 미소 지었다.  

김상옥 사모(조양현 교수 妻)는 “몸이 고되다가도, 좋은 물건을 사 가면서 즐거워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긍정에너지를 받는 거 같아 피곤이 싹 가신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이 학교와 교회가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모쪼록 이 캠퍼스에서 받은 사랑을 사회에 나가 누군가에게 나누면서 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주 수요일에도 삼육대 체육관 앞 주차장에서는 ‘도르가 장터’가 열릴 것이다. 적어도 여기서는 가격을 깎지 않았으면 좋겠다. 에누리가 곧 장학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