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금요일 장년 교과] 더 깊은 연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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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인류로 창조된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의 관계도 새로워져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상대를 억압하지 말고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관계에 기초하여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상대방을 사랑하고 자신처럼 돌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신부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혼인을 고대하는 것같이 그리스도인도 예수님과의 언약의 성취를 고대하며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이 전한, 같은 신자로서 자녀들을 존중하는 태도(엡 6:1~3)는 오늘날 세상에서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높인다. 아버지를 향한 바울의 권면(엡 6:4)은 부모의 책임을 생각하도록 한다. 종에 대한 바울의 권면(엡 6:5~8), 특히 주인에 대한 바울의 권면(엡 6:9)을 오늘날 적용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사회적 상황이 다르며 어떤 형태로든 노예제도는 심각한 악이기에 더 도전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 말씀은 영감을 받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오늘날에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해야 한다. 1세기 에베소의 신자들처럼, 우리에게는 복음의 가치를 우리의 관계 가운데 적용할 수 있는 특권과 책임이 있다. 그런 맥락 아래에서 아래의 질문들을 살펴보라.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재림교인들에게 “주의 오심을 위해 준비된 백성”의 증거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눅 1:17, 말 4:6)
2. 바울의 자녀에 대한 명백한 존중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어린 시절에 폭력, 성적 학대, 고통을 경험한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돌봄을 베풀어야 할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아동기 부정적 경험” (https://ocfs.ny.gov/publications/Pub5222/OCFS-Pub5222-KO.pdf)이 미치는 심각한 영향에 대한 연구를 살펴볼 때, 이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3. 어린이에 대한 바울의 존중과 어린이에 대한 예수님의 돌보심의 연장선상에서, 어린이들의 양육과 보호에 대한 교회의 책임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 어떤 제도와 절차가 마련되어야 하는가?
4. 노예와 주인에 대한 바울의 권고(엡 6:5~9)는 종종 직원과 고용주 사이의 관계에 적용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 적절한가? 동시에 어떤 위험이 따르는가?
5. “세계 노예지수”에 따르면 오늘날에도 4천만 명 이상이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노예제 폐지를 위해 헌신했던 영적 선조들의 후예요 자유인으로서, “그가 사슬을 끊으리니 종은 우리의 형제로다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모든 억압이 그치네”([오 거룩한 밤]의 영문 가사: 편집자 주)라며 그리스도를 노래할 때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한 교사와 200번의 장례식(라트비아)

비네따는 길 건너편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성을 보았습니다. 비네따의 학생, 안드레가 사고로 죽은 다음 날이었습니다. “당신이 안드레의 어머니입니까? 저는 그의 선생님입니다.” 어머니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비네따는 슬픔에 빠진 안드레의 반 친구들에게 했던 말을 반복했습니다. “안드레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가족을 사랑했고 친절한 소년이었지요. 만약 그가 살아있어서 계획대로 제재소에 가서 일을 했다면 다른 직원들처럼 변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까요? 제재소로 간 대부분이 술에 빠져 신앙을 버립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믿음을 가졌고 분명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슬프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섭리로 이 일을 막지 않으셨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아들이 사고 후 엄마는 매 시간 전화를 걸어 학교에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네따를 만난 후 평안을 찾았다고 하며 “더 이상 전화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선생님이 제 아들의 장례식을 인도해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고 교장선생님이 초조하게 비네따에게 말했습니다. “비네따 선생님, 집으로 가서 장례식 준비를 하세요.” 그녀는 놀랐습니다. “한 번도 장례식을 인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죠.” 교장은 “괜찮아요. 할 수 있습니다. 다 잘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네따는 나사로에 대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장례식 날, 군중 앞에서 관 가까이에 서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지금 계시다면, 그는 이 관이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을 것입니다. 나사로같이 안드레에게 ‘무덤에서 나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언젠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것이며 그는 무덤에서 나와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날 저녁, 한 선생님이 비네따에게 전화 했습니다. “한 학생의 어머니가 전화해 선생님께 부탁해 달라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선생님이 장례식을 인도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녀는 할머니를 알았기에 장례식 준비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잠언 31장을 바탕으로 할머니를 이상적인 여성과 비교했습니다.
장례식 후 비네따는 한달 예산을 계산하다가 장례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월급은 적었고 두 아들을 키우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되는 그 순간 장례식을 인도할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장례식장에 연락했습니다. 책임자는 작은 장례식을 맡기고 지켜본 후 만족해하며 다음부터 장례식을 이끌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수업을 하면서 장례식도 인도했습니다. 때로는 빨간 신호등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했습니다. 다른 일로 인도하시기 전까지 그녀는 마을에서 200건 이상의 장례식을 인도했습니다. “때론 슬프고 때론 보람 있지만, 장례식을 통해 하나님을 전했던 귀한 일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일이던 간에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 것이 분명하니까요.
제공: 대총회 세계선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