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예레미야 24장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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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렘 24:2).

좋은 무화과, 나쁜 무화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여주셨는데 한 광주리에는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었고 나머지 한 광주리에는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었습니다(1, 2절)

좋은 무화과는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상징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해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7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비해 유대 땅에 남겨진 자들에 대해서는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1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끌려간 사람들을 편애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런 것일까요?

차이

원래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이나 유다 땅에 남겨진 사람들이나 예레미야가 전한 멸망에 관한 예언의 말씀들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고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이와 같은 심판을 받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교만하고 나태했지만, 이제 포로로 끌려가서는 자신들이 받는 징계를 수긍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받는 징벌은 연단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연단은 소망을 이룹니다(롬 5:4). 연단은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우리 안에 창조합니다.

이에 비해,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의 마음은 그들과는 반대였습니다. 자기들은 포로로 끌려간 자들보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우월하다는 교만에 빠졌고 선지자들의 기별을 계속해서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해서 무너지는 것을 목도해야만 했고 쫓겨남과 수치와 조롱을 당해야만 했습니다(참조 렘 29:19; 겔 11:3).

처음에는 두 무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지만. 이후에 바벨론에 끌려간 무리는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징계를 연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남은 무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다가 결국 멸망했습니다.

기도)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