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수요일 장년 교과] 마리아와 다른 이들에게 보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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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부활을 제일 먼저 증거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시 그들의 낮은 위상으로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에 부활은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다.

마가복음 16:9~20을 읽어 보라. 이 구절은 부활 이야기에 무엇을 더하는가?

마가복음 16:9~20의 거의 모든 구절은 신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발견된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예수를 만나고(마 28:1, 9, 10; 요 20:11~18, 눅 8:2), 두 제자가 예수님을 뵙고(눅 24:13~35), 11명의 제자가 사명을 받는다(마 28:16~20, 눅 24:36~49, 요 20:19~23).
예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요 20:11~18). 다른 여인들도 그분을 보았다(마 28:8~10).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본 사람들이 여성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고대 세계에서 여성은 증인으로서 위치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조작된 것이었다면 첫째 증인으로 남성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도 아니고 열한 제자도 아닌 여성이 첫 번째 증인이다. 그녀는 제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러 갔지만, 당연히 제자들은 그녀의 증언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그녀가 환상을 본 것으로 생각했고 또 불행히도 소식을 전한 마리아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예수의 부활 이야기를 변증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처음 본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사용했다.

마가복음 16:14에서 있었던 일을 조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떤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가?

만약 이것이 제자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면 그들은 왜 자신을 그렇게 나쁘게 만들었는가?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꾸짖으셔야 했다. 예수님이 체포된 때부터 부활 후 보이실 때까지 복음서의 기록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도망치고, 부인하고, 불신하는 등 매우 부정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지어낸 이야기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어서) 대조적으로, 이후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담대하고 확고한 선포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주는 소망은 그들의 주장이 진실하다는 것을 강력히 입증한다.

<교훈> 여성이 부활을 제일 먼저 증거한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시 그들의 낮은 위상으로 증인으로 세우지 않았을 것이기에 부활은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다.

<묵상>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의심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의심과 불신이라는 영적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겠습니까?

<적용>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자신을 매일 연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변화된 마리아 – “예수의 은혜로 그는 거룩한 품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타락하여 그 심령이 사귀의 거처가 되었던 자가 구주와 가까이 교제하고 또 봉사하는 자가 되었다. 예수의 발아래 앉아서 배운 사람은 마리아였다. 예수의 머리에 귀중한 기름을 붓고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은 사람은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섰으며 무덤까지 그를 따라갔다. 예수의 부활 후에 무덤에 제일 먼저 나타난 사람은 마리아였다. 부활하신 구주를 처음 선포한 사람도 마리아였다”(시대의 소망, 568).

<기도>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사회적 상황과 일들이 있지만 하늘은 그것과 관계없이 우리를 평가하는 것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치를 마음에 깊이 간직하게 하시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로서 생활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