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일요일 장년 교과] 최후의 모습을 보여 주심

100

하나님께서는 괴로운 마음으로 바위섬에 갇혀 있던 요한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 평안한 쉼을 허락하셨다.

예수님과 실제로 함께 지냈던 제자 중 가장 오래 생존한 사도 요한은 바위섬에 유배되었다. 소중하고 친근한 모든 존재에게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섬에서 요한은 어떤 마음이었겠는가? 어떻게 이런 지경이 되었나라는 생각에 괴롭지 않았겠는가?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모습을 보았고 거기 서 있던 두 천사가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승천과 천사들의 말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다시 오시지 않았다.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도들은 다 죽었고, 대부분이 예수님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교회는 세대교체를 겪었으며, 바야흐로 외부로부터는 끔찍한 박해가, 내부에서는 수상한 이단의 움직임이 다가오고 있었다. 요한은 외롭고, 고단하고, 마음의 평화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 홀연히, 환상이 보였다.

요한은 이 환상을 통해 어떤 위로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가? 계 1:9~19을 읽어 보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는 말씀은 분명, 외롭게 바위섬에 갇혀 있던 요한에게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요한은 ‘알파와 오메가이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님께서 유배지에 갇혀 있는 자신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을 드러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크나큰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이 구절에 뒤이어 나오는 것은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계시였다. 놀라운 역사의 파노라마가 제시되었는데, 오늘의 우리에게는 기독교 교회의 역사이자 요한에게는 당시 교회의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묵상>
새 하늘과 새 땅을 묘사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21, 22장을 묵상해 보십시오. 이 말씀 속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소망을 발견하게 되나요?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교회에 밀어닥칠 시련과 함께 그 모든 고난이 어떻게 끝날지를 보여 주셨고, 요한은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 2)라고 기록했다.
요한이 계시록에 기록한 위대한 묵시적 환상은 그에게 하나님의 섭리와 약속 가운데 평안한 쉼을 얻게 하였다.

<교훈>
하나님께서는 괴로운 마음으로 바위섬에 갇혀 있던 요한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과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환상을 보여 주심으로 평안한 쉼을 허락하셨다.

<적용>
현재 우리의 삶은 힘들고 때론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미래의 주관자가 되시고 그러므로 그 끝은 아름다울 것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위로를 줄 수 있나요?

<영감의 교훈>
밧모섬에 갇힌 요한 – “에게해 가운데 있는 바위로 덮인 불모의 섬인 밧모는 로마 정부가 죄수들의 정배지로 택한 곳이었으나 하나님의 종에게는 이 침울한 거처가 하늘의 문이 되었다. 분주한 생활환경에서 그리고 이전 생활의 활동적인 수고에서 차단된 채 이곳에서 요한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과 교제하였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미래의 모든 시대를 위한, 교회를 위한 가르침을 받았다”(사도행적, 570).

<기도>
세상에서 마주하는 현실로 인해 좌절과 낙심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분명히 준비된 하늘나라를 마음에 품고 하늘의 평안과 쉼 가운데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