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수요일 장년 교과] 나의 잔을 마실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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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영광의 자리를 구했지만, 주님은 고난의 잔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들은 고난에 참여하였고 이후에는 주께서 예비한 영광의 처소에 들어갈 것이다.

마가복음 10:32~45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는 예수님의 사명만 아니라 그분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몰랐던 제자들의 무지함이 어떻게 드러나 있는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면서 앞으로 그곳에서 일어날 일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신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윤곽에 대한 예수님의 구체적인 표현은 충격적이다. 제자들은 그 말을 믿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무시하기도 쉽다.
야고보와 요한이 개인의 요청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도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예수께서 즉시 무엇을 구하는지 구체적으로 물었을 때, 그들은 주님의 영광 가운데서 그분의 좌우편에 앉고 싶다고 대답한다. 그들의 요청을 지독한 자기중심주의가 아니냐고 비판하기 쉽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해 헌신해왔고, 그들이 바랐던 본질이 전적으로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요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당신의 잔을 마실 수 있는지, 혹은 당신의 침례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으신다. 잔은 겟세마네와 십자가의 고난의 잔(막 14:36)일 것이고, 침례는 그분의 죽음과 장사(막 15:33~47)를 말하는 것이며, 마가복음 1장에 기록된 침례와 유사한 사건들이 그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 말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이를 기꺼이 받을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도 분명 당신의 잔을 마시고 당신이 받으시는 침례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야고보는 사도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행 12:2). 요한은 사도 중 가장 오래 살았고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계 1:9).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영광의 처소를 예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다른 제자들은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여기 사용된 “분노하다, 분개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아가낙테오(aganakteō)가 마가복음 10:41, 14에도 사용되었다. 이는 어린아이들을 못 오게 막은 것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에 사용된 것과 같은 강력한 표현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그분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 중 하나를 주신다. 그분은 이방인 통치자들이 개인의 유익을 위해 힘을 사용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힘은 항상 다른 사람을 북돋아 주고 축복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드리심으로 하늘 왕국의 왕으로서 모범을 보이신다. 그것은 제자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교훈> 제자들은 영광의 자리를 구했지만, 주님은 고난의 잔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들은 고난에 참여하였고 이후에는 주께서 예비한 영광의 처소에 들어갈 것이다.

<묵상>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당신은 사람들과의 매일의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종이 되어 섬기는 원칙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으뜸이 되려면 – “두 아들의 어머니가 아들들이 그분의 왕국에서 하나는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도록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의 왕국의 명예와 영광은 이 세상의 명예와 영광과는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 주셨다. 크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겸비하게 시중들어야 하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 자녀들에게 봉사자요 종으로 일하셨듯이 종이 되어야 한다”(교회 증언 4권, 226).

<기도> 우리를 위해 고난의 잔을 마신 주님의 희생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잔을 마시기에 너무 부족하지만, 주님의 모본과 사랑을 본받기 원합니다.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시고 곧 임할 영광의 나라를 바라보며 느려도 한 걸음씩 전진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