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수요일 장년 교과] 누가 가장 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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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큰 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 생각이 뒤집힌다.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 싶으면 종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마가복음 9:30~41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언은 마가복음 8:31과 무엇이 다른가? 또 제자들은 무엇에 대해 논쟁하였으며, 예수님은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가?

첫 번째 예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거부하고 죽일 자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두 번째 예언에서는 자신이 배신당할 것이라고만 하신다. 예언은 배신자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지만, 독자들은 그것이 유다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막 3:19). 주님은 죽임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을 다시 말씀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예언에 유의하지 않는 것 같다. 반갑지 않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갈 일이 있겠는가.
마가복음 8:27에서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 갈릴리 바다 북쪽에 계셨고, 9:30에서는 갈릴리를 지나시며, 9:33에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신다. 따라서 그분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여행하셨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열두 제자는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홀로 들어가신다. 제자들이 도착하자 예수께서는 오는 길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으신다. 제자들은 마치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아이들처럼 그 질문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들은 누가 가장 큰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주제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 생각이 거꾸로 뒤집히게 된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두 단계로 설명하신다. 먼저, 예수님은 첫째가 되고자 한다면(가장 위대하려면) 종이 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행동으로 그 의미를 설명하신다. 예수님은 근처에 있던 한 아이를 무리 가운데 세우셨다. 아이에게는 떨리는 순간이었을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 아이를 품에 안으시며 긴장을 풀어주신다. 그분은 이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당신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나를 영접하는 것은 내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장 비천한 아이가 위대한 하나님과 연결된다.

(이어서) 요한은 외인에 대해 질문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대적하지 않는 자들은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신다. 주님은 그리스도인 봉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하늘에서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확언하신다.

<교훈> 모든 사람이 큰 자가 되고 싶어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 생각이 뒤집힌다.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고 싶으면 종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묵상> 세상의 생각과 대조되는 성경이 말하는 위대함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은 위대함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당신은 어떤 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참된 위대함을 얻기 위해 당신에게 무엇이 필요합니까?

<영감의 교훈>
참된 위대함 – “하늘이 위대하게 평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크다고 여기는 것 곧 그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부, 지위, 훌륭한 가문, 지적 선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도덕적 가치이다. 사랑과 순결이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속성이다. 요한이 산헤드린이 보낸 사자들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나,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영예를 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 앞에 예수를 약속된 분으로서 가리켰을 때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하였다”(시대의 소망, 219).

<기도> 주님, 높고자 하는 저의 마음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욕심과 쓸데없는 마음을 버리게 하시고 겸손하신 주님의 위대함을 품게 하옵소서.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하나님 나라를 영접하도록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