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에 제국의 연합을 위해서 종교적 방법을 썼던 것처럼 사탄은 말세에 안정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정치 종교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수많은 설문 조사는 사람들이 각종 기관과 정부를 거의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세상을 이끌어 줄 충직한 지도자가 어디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짐승의 세력이 종교/정치 연합체의 지원하에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요한계시록 17:12~14을 읽어 보라. 요한은 지구 역사의 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여기서 어떤 중대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가?
이 구절에서 요한은 세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한다. 첫째, 정치 세력들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준다. 둘째, 이 오류의 집합체는 어린양이신 예수님과 전쟁을 벌인다. 셋째, 지구의 마지막 전쟁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승리한다. 짐승은 패배하고 예수께서 승리하신다.
그대는 마귀가 국가들을 연합하게 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사용할지 궁금해 한 적이 있는가? 역사는 자주 반복된다. 우리는 로마 제국의 붕괴에서 귀중한 교훈을 발견한다. 게르만족의 침략이 서유럽을 황폐화했을 때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종교에서 방법을 찾아냈다. 국가의 권력과 결합된 교회의 권위야말로 콘스탄티누스가 필요로 했던 것이었다. 그가 4세기에 일요일의 신성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했던 것은 위기의 시기에 제국을 통합하기 위해 계산된 정치적, 종교적 움직임이었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제국이 연합되기를 원했고 로마 교회는 제국이 “개종”하기를 원했다. 저명한 역사가 아서 와이걸(Arthur Weigall)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한다. “교회는 일요일을 신성한 날로 만들었다… 주요 원인은 그 날이 일주일 중에서 태양의 축제일이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교 축제를 인수하여 거기에 기독교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확고한 기독교의 정책이었기 때문이다.”(The Paganism in Our Christianity, New York: G. P. Putnam’s Sons, 1928, 145)
(이어서) 온 세상이 놀라고, 손상되고, 두려운 큰 위기의 때에 사람들은 안정과 보호를 가져다 줄 누군가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이것이 과거에 폭정이 일어난 방식이며 그것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 할 이유가 없다. 예언에 따르면 무언가가 이러한 마지막 사건을 초래케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전개될지 다 알기 어렵지만, 세상은 언제라도 엄청난 변화가 올 수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급속하게 진행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일이 다가오든 우리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교훈> 로마시대에 제국의 연합을 위해서 종교적 방법을 썼던 것처럼 사탄은 말세에 안정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정치 종교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묵상>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들을 보면서 세상의 상황이 얼마나 급속하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세계에서 일어나는 큰 변화의 징조들이 나타날 때에 그대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자세는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영감의 교훈>
짐승의 우상을 세우게 될 미국 – “처음에 말한 짐승은 로마교회를 표상하는 것으로 정치적 세력을 빌려 모든 반대자를 벌할 수 있는 종교 단체이다. 짐승의 우상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다른 종교적 단체를 표상한 것이다. … 미합중국 안에 법왕권의 우상이 나타날 것이다. 미국에 있는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조로 연합하여 국가에 압력을 가하여 교회가 저들의 조직을 유지하게 하는 법령을 발표하게 하는 때에는 개신교 미국은 로마교회의 교권의 우상을 만들게 될 것이다.”(살아남는 이들, 382)
<기도> 매 순간 기만하는 사탄의 전략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연약하여 넘어지기 쉬우니 가는 길을 인도하여 주시며 주의 말씀으로 붙잡아 주옵소서. 시험 중에도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바라보는 충실한 종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