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시편 139편 나를 잘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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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시 139:1).

주님은 나를 잘 아시는데

다윗은 시편 139편 1~4절에서 “주님께서 나를 알고 계신다”라는 표현을 다섯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기에 나를 훤히 알고 계시며(1절),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도,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2절). 또 내 모든 행위를 다 아시고(3절),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4절). 시인은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13절)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나를 나의 부모보다, 나보다 더 잘 아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쫓겨나셨으면서도 여전히 문 앞에 찰싹 붙어서 애달프게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을 정말 모르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습니다.

주님을 피해서 떠나 볼까?

제게는 아담이나 요나와 같이, 하나님을 피하고, 자신의 죄와 잘못을 숨기고 감추려는 모습이 있는 듯합니다. 이 시를 노래한 다윗도 그러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7절)라고 노래하며, 잘못된 길을 갈지라도 끝까지 찾아가 바로 잡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또, 8절의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라는 말씀은, 어려움이 없었던 시절, 인생 최고의 시간에도 주님이 함께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라는 말씀은, 절망 속에 쓰러져 있던 가장 고통스러운 그 시간, 지옥같이 힘든 그때에도 주님께서 함께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느 자리, 어느 시간, 어떤 상황,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라도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주님 앞에서의 용기

시인은 자신을 잘 아는 하나님께 자신을 살펴 시험하여 자기 뜻을 알아달라고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 뜻은 영원한 길을 가는 것이니 그 길로 인도해달라고 말합니다(23, 24절). 영원한 길은 선하심이 영원하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중도에 끊김이 없는 하늘까지 가는 길입니다. 그는 그 길을 주님과 함께 가고 싶어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기도) 저를 가장 잘 아시는 분과 영원한 길을 걷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