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5일 월요일 장년 교과] 누가 용서를 받았는가? (사 59: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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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용서받은 자의 믿음은 율법에 순종하는 삶으로 증명된다.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사 59:11).

이사야 59장은 죄의 문제에 대한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다행히도 성경은 구속의 소망도 제시한다. 우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죄를 지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은 죄 없음에 기초할 수 없고 용서에 기초해야 한다(렘 31:34). 바울도 여기에 동의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롬 3:9~20, 23).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차별도 없다(롬 3:22). 따라서 의인이 의롭다고 판결을 받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마련된 하나님의 의라는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롬 3:21~24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는다고 말하는가? 이 말씀들은 심판의 때에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제시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이 재판을 보며 생각하는 질문은 ‘누가 죄를 지었는가?’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것은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다. 오히려 ‘누가 용서를 받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하나님이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롬 3:26)고 하시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심판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인은 ‘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용서를 받았으며, 또한 계속적으로 용서를 받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행위로 심판받지만 그렇다고 행위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믿음은 소용이 없어진다(롬 4:14). 오히려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드러낸다(약 2:18).
지금이나 심판의 때나 우리는 왜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는가?(롬 3:20, 23)
누구도 선행이나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죄악 세상에서 율법의 목적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적하는 것이다.

교훈 :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용서받은 자의 믿음은 율법에 순종하는 삶으로 증명된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그대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대가 노력할수록 하나님의 용서와 성령의 도움이 더욱 절실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어서) 대신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 5:6), 곧 성령이 사람의 마음에 부어주신 사랑은 그 사람에게 예수님을 신뢰하는 산 믿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약 2:26 참고). 행위는 구원을 받게 하는 믿음의 외적인 표현이자 인간적인 표명이다. 그래서 진실한 기독교 신앙 경험은 날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표현으로서 율법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난다. 심판 때에 믿음의 사상을 배우지 못한 자들에게는 행위가 증거가 된다. 그러나 회심한 자들에게는 오직 회심에 따른 행위만이 심판과 관련이 있다. 회심한 생애는 그리스도와 성령으로부터 능력을 받는다. 그리고 회심 이전에 있었던 죄의 생애는 어린 양의 보혈로 씻음을 받는다(롬 6장 참고).

적용 :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성령의 도움과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적어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용서의 상태를 유지함 – “모든 믿는 영혼은 자신의 뜻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고 회개와 뉘우침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구속자의 속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나타내어 능력에서 능력으로, 영광에서 영광으로 전진해야 한다. … 용서받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흠 없이 서게 된다”(믿음과 행함, 103).

기도
아버지, 저의 노력으로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저를 의의 두루마리로 감싸시고 늘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