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성소, 곧 여호와께서 지으시고 사람이 짓지 아니한 참 장막이 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고,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단번에 드리신 당신의 속죄의 희생의 은혜가 믿는 자들에게 효력을 나타내게 하신다. 그분은 승천하시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취임하시고 중보의 봉사를 시작하셨다. 그분은 2,300주야의 예언 기간의 끝인 1844년에, 그분의 속죄 봉사의 두 번째요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셨다. 그것은 모든 죄의 최종적 처리에 해당되는 조사 심판의 사업이며, 고대 히브리 성소가 대속죄일에 정결케되는 의식으로 예표되었던 것이다. 이 예표로서의 의식에서는 동물의 희생 제물의 피로 말미암아 성소가 정결케 되었지만, 하늘의 것은 예수님의 피의 완전한 희생으로 정결케 된다. 조사 심판은, 죽은 자들 중에 누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첫째 부활에 참여하기에 합당한가를 하늘의 주민들에게 계시해 준다. 그것은 또한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누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고 있고, 그러므로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도록 승천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분명히 알려준다. 이 심판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옹호한다. 그것은 하나님께 충성해 온 자들이 하늘 나라를 얻을 것을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이 봉사가 끝나면 재림 전에 인간을 위한 은혜의 기간도 끝난다.-기본 신조, 24.
저녁 제사 시간이 되자, 제사장은 예루살렘 성전 뜰에 서서 희생 제물인 어린양을 드릴 준비를 갖추고 서 있다. 그가 희생물을 죽이고자 칼을 들자 땅이 진동한다. 그는 놀라서 칼을 떨어뜨리고 어린양은 도망친다. 지진의 소음 속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성전 휘장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는 요란한 소리를 듣는다.
마을 저편에서는 검은 구름이 십자가를 둘러싼다. 하나님의 유월절 양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부르짖으시고 세상 죄를 위하여 운명하신다.
표상은 실체를 만났다. 여러 세기를 통하여 성전의 봉사가 가리켜온 바로 그 사건이 이루어졌다. 구주께서는 그분의 속죄 희생을 완성하셨다. 그러나 표상이 실체와 만났기 때문에 이 희생을 예표하는 의식들은 폐지되었다. 그래서 휘장은 찢어지고, 칼은 떨어지고, 어린양은 도망쳤다.
그러나 거기에는 구원 역사에 있어서 다른 과정이 더 있다. 그것은 십자가가 사건너머까지 미친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그분께서 더 이상 어린양이 아니고, 제사장으로서 봉사하시는 하늘 성소로 우리의 주목을 이끈다. 최종적이고도 완전한 희생이 드려졌다(히 9:28). 이제 그분은 이 속죄의 희생이 모든 사람에게 효력을 나타내게 하신다.
하늘의 성소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지상에 거하실 장소(출 25:8)로서 첫(옛)언약(히 9:1) 아래 기능을 발휘한 첫 성소를 지으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이것은 백성들이 구원의 길을 배운 장소였다. 약 400년 후에 솔로몬 왕이 지은 예루살렘의 영구적인 성전이 모세의 이동식 성막을 대신했다. 느부갓네살이 그 성전을 파괴한 후, 바벨론의 포로에서 돌아온 귀향인들이 두 번째 성전을 지었는데, 헤롯 대왕이 그것을 아름답게 중창하였고, 로마인들이 주후 70년에 파괴했다.
신약 성경은 새 언약에도 성소, 곧 하늘의 성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거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신다. 이 성소는,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히 8:1, 2)다.* 시내산에서 모세는 하늘 성소의 “식양”, 사본, 축소판 모델을 보았다(출 25:9, 40).* 성경은 모세가 지은 성소를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 혹은 “참것의 그림자”(히 9:23, 24)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지상 성소와 그 의식들은 하늘 성소의 역할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우리에게 준다.
성경 전편을 통하여 하늘 성소, 혹은 하늘 성전의 존재가 알려져 있다(시 11:4, 102:19; 미 1:2, 3 참조).* 계시자 요한은 이상 가운데 하늘 성소를 보았다. 그는 그것을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계 15:5), 혹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계 11:19)이라고 묘사한다. 거기서 그는 지상 성소의 성소 안에 있는 기구들의 원형인 일곱 금촛대(계 1:12), “금단(분향단)”(계 8:3)과 같은 기구들을 보았다. 그는 또한 지상 성소의 지성소 안에 있는 것과 흡사한 언약궤를 거기서 보았다(계 11:19).
하늘의 분향단은 하늘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계 8:3, 9:13, 4:2, 7:15, 16:17). 그러므로 하늘의 보좌실 장면은(단 7:9, 10) 하늘 성전 혹은 성소 안에 있다. 마지막 심판이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계 15:5-8).
그러므로 성경은 하늘 성소가 실제적인 곳이요(히 8:2) 비유나 추상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려준다.* 하늘 성소는 하나님의 주(主) 거처이다.
하늘 성소에서의 봉사
성소의 기별은 구원의 기별이었다. 하나님은 그 의식을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용하셨다(히 4:2). 지상 성소의 봉사는 “현재까지의 비유”, 곧 그리스도의 초림까지의 비유였다(히 9:9, 10). “표상과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 비유의 수단으로 이스라엘의 믿음을 세상의 구속주, 곧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과 그의 제사장 봉사에 초점을 맞추고자 의도하셨다”(갈 3:23; 요 1:29).*
성소는 그리스도의 봉사의 세 단계, 즉 (1) 대속적 희생, (2) 제사장 중보, (3) 마지막 심판을 예증했다.
대속적 희생. 성소의 모든 희생 제사는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는 진리를 나타내었으며(히 9:22) 죄의 용서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을 표상했다. 그 희생 제사들은 다음의 진리들을 예시(例示)했다.
1.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죄는 선하고 순결하고 진실한 모든 것에 대한 뿌리깊은 반역이기 때문에, 결코 등한히 여겨질 수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6:23)다.*
2.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고전 15:3)셨다.
3.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속죄의 희생. 그 희생은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다(롬 3:24, 25).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구속주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받으실 대우를 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를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은 아무 상관이 없으신 우리의 죄를 인하여 정죄를 받으신 것은 아무 공이 없는 우리가 당신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렸…도다'(사 53:5).*
지상 성소의 희생 제사는 반복적이었다. 하나의 이야기처럼 구속의 이같은 의식적 비유는 반복되고 또 해마다 반복되어졌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실체, 곧 우리 주님의 실제적 속죄의 죽음은 갈바리에서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졌다(히 9:26-28, 10:10-14).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 값은 충분히 지불되었다. 하나님의 공의는 충족되었다. 법적 견지에서 세상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도록 회복되었다(롬 5:18). 속죄, 혹은 화목은 희생 제물로 예표된 바와 같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회개한 신자는 우리 주님의 이 완성된 사업을 신뢰할 수 있다.*
제사장 중보. 희생 제사가 죄를 속했다면 왜 제사장이 필요했는가? 제사장의 직무는 죄인들과 거룩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중보의 필요를 주목하게 했다.
제사장 중보는 죄의 심각성과 그것이 죄 없는 하나님과 죄 많은 피조물 사이에 만들어 놓은 분리를 보여준다. “마치 모든 희생 제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했던 것처럼 모든 제사장은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을 예표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1. 중보자와 속죄. 제사장이 중보 봉사를 하면서 행하는 속죄의 피의 적용은 속죄의 한 형식으로 나타났다(레 4:35). “속죄”를 나타내는 영어 단어(atonement)는 사이가 버그러진 양편을 화목시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이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시킨 것처럼, 그분의 중보, 혹은 그분의 죄 없는 생애와 대속적 죽음의 공로의 적용은 신자에게 화목 혹은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실현시킨다.
레위족 제사장 직분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 이후에 계속 수행해 오신 구원의 봉사를 예시(例示)한다. “위엄의 보좌 우편”에서 봉사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닌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로서의 직무를 행하신다(히 8:1, 2).
하늘 성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의 제사장 봉사를 하시는 위대한 지휘 본부이다. 그분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히 4:16).
지상 성소에서 제사장은 두 가지 별개의 봉사를 했는데, 그것은 성소 혹은 첫째 칸에서의 매일의 봉사(본서 4장 참조)와 지성소 혹은 둘째 칸에서의 연례적 봉사였다. 그 봉사들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를 예시했다.*
2. 성소에서의 봉사. 성전 안의 성소에서의 제사장 봉사는 중보와 용서와 화목과 회복의 봉사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계속적인 그 봉사는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끊임없이 접근하는 길을 제공했다.* 그것은 회개한 죄인이 중재자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즉각적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 상징했다(엡 2:18; 히 4:14-16, 7:25, 9:24, 10:19-22).
회개한 죄인이* 희생 제물을 가지고 성소에 왔을 때, 그는 죄 없는 동물의 머리 위에 자기의 손을 얹고 죄를 고백했다. 이 행동은 상징적으로 그의 죄와 그 형벌을 희생물에게로 옮겼다. 그 결과로, 그는 죄의 용서를 받았다.* 유대 백과 사전에 기록된 바와 같이, “희생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죄의 대치(代置)와 전가(轉嫁)가 이루어지게 하는 일반적인 의식이다. 모든 제사에는 대치의 사상이 있다. 희생물이 인간 죄인을 대신한다.”*
속죄 제물의 피는 다음의 두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1) 성소 안으로 가져왔을 때는 성소 안 휘장 앞에 뿌려지고, 분향단 뿔에도 발려졌다(레 4:6, 7, 17, 18). 2) 그러나 성소 안으로 가져오지 않았을 때, 그것은 뜰에 있는 번제단의 뿔에 발려졌다(레 4:25, 30). 그런 경우에는 제사장이 그 희생 제물의 고기의 일부를 먹었다(레 6:25, 26, 30). 어떤 경우에서나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죄와 형벌이 성소와 제사장에게로 옮겨진 것을 깨달았다.*
“이 의식적(儀式的) 예증에서 성소는, 회개한 자가 속죄 제물을 바치고 자신의 실수를 고백할 때 그의 범죄와 형벌을 적어도 한동안 담당했다. 그는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확신하면서 돌아간다. 그와 마찬가지로 원형적(原型的) 경험에 있어서도 죄인이 성령의 감동에 의하여 회개함으로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죄와 형벌을 떠맡으신다. 그는 값없이 용서를 받는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의 대리자일 뿐 아니라 그의 보증인이시다.”*
표상과 원형에 있어서 성소의 봉사는 주로 개인에게 중심을 둔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는 죄인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화목을 제공한다(히 7:25).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그에게 그분의 아들의 의로운 품성과 순종을 입혀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하신다. 그리고 생명책에 그의 이름을 그분의 자녀들 중 하나로 기록하신다(엡 4:32; 요일 1:9; 고후 5:21; 롬 3:24; 눅 10:20). 믿는 자가 그리스도안에 거할 때, 영적 은혜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주님의 의하여 그에게 전달됨으로써 그는 영적으로 자라나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미덕과 덕성이 계발된다(벧후 3:18; 갈 5:22, 23).”*
성소의 봉사를 통해서 믿는 자의 칭의와 성화가 이루어진다.
마지막 심판. 대속죄일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세 국면들을 설명한다. 그것은 (1) “재림 전 심판”이라고도 불리어지는 “천년기 전 심판”(혹은 조사 심판), (2) “천년기의 심판”, (3) 천년기 끝에 이루어지는 “집행 심판”이다.
1. 지성소에서의 봉사. 제사장 봉사의 두 번째 부분은 주로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의 정결을 근간으로 하는 데, 성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지성소에 초점을 둔 봉사, 오직 대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고 일년에 단 하루에만 국한된 봉사로 이루어진다.
성소의 정결에는 두 염소가 필요했다. 하나는 여호와께 드릴 제물이요 다른 하나는 아사셀(히브리어로 Azazel)을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께 드릴 염소를 바침으로 대제사장은, “그 지성소와 회막(성소)과 단(뜰의)”을 위하여 속죄했다(레 16:20, 16:16-18 참조).
그리스도의 피를 대표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피를 지성소 안으로 가져간 대제사장은,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바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에 그것을 직접 뿌렸다. 피의 행동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지불하셔야 했던 무한한 값을 표상했고,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 자신과 화목시키기를 얼마나 열망하시는지를 나타냈다(고후 5:19 참조). 그리고 그는 이 피를, 일년 중 매일 고백한 죄를 나타내는 피가 뿌려져 온 분향단과 번제단에도 뿌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대제사장은, 백성은 물론이요 성소를 위한 속죄를 이루고, 그 둘을 다 같이 정결케 했다(레 16:16-20, 20-33).
그리고 나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대제사장은 성소를 더렵혀왔던 죄를 자기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 있는 염소, 곧 아사셀에게로 그 죄들을 옮겼으며, 그 염소는 하나님 백성의 진영에서 떠나보냈다. 이 행동은 상징적으로 매일의 용서의 의식에 사용된 희생 제물의 피나 고기를 통하여 회개한 신자들에게서 성소로 옮겨진 백성들의 죄를 제거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성소는 정결함을 받고 다음 한 해의 봉사 사업을 위하여 준비되었다(레 16:20, 30-33).* 이리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는 모두 바로 잡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대속죄일은 죄의 박멸을 취급하는 심판 과정을 예시한다. 그날에 이루어진 속죄는, “죄의 존재를 영원히 도말하고 우주가 하나님의 조화로운 지배 아래 완전한 화목을 이루게 하는 그리스도의 공로의 최종 적용을 예표했다.”*
2. 아사셀 염소. “히브리어 아사셀(azazel)을 영어로 ‘스케입고웃'(scapegoat)(쫓겨난 염소, escape goat)로 번역한 것은 불가타역(Vulgate)의 카페르 에미사리우스(caper emissarius), 곧 ‘보내버린 염소’에서 유래된다”(레 16:8, RSV, KJV 난외 주).* 레위기 16장을 주의깊이 살펴보면, 아사셀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사단을 나타낸다. 그 사실을 입증하는 이론은 다음과 같다. “(1) 아사셀은 희생 제물로 죽음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를 가져다주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 9:22). (2) 성소는 아사셀이 의식에 참여하기 전에 여호와께 드려진 염소의 피에 의하여 완전히 정결해졌다(레 16:20). (3) 성경 기록은 아사셀을 하나님께 대하여 반대되고 상반되는 존재로 취급한다. (레위기 16장 8절은 글자 그대로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성소 비유의 배경에서 보면,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아사셀은 사단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3. 심판의 다른 국면들. 대속죄일의 아사셀 의식은 갈바리를 넘어서 죄악 문제의 마지막 종결, 곧 죄와 사단의 추방을 나타냈다. “죄에 대한 완전한 책임은 죄의 창시자요 선동자인 사단에게로 넘겨질 것이다.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모든 죄의 결과들은 완전히 파멸되어 우주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심판에 의한 속죄로 말미암아 온 우주는 완전히 화목해지고 조화롭게 될 것이다(엡 1:10).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행하는 제사장 봉사의 두 번째요 마지막 국면에서 성취되어야 할 목표이다.”* 이 심판은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공의를 최종적으로 옹호하게 될 것이다.*
대속죄일은 마지막 심판의 세 국면들을 묘사했다:
1) 성소에서의 죄의 도말은 첫 번째 혹은, 재림전 조사 심판의 국면과 관련된다. 그것은 “대속죄일이 회개한 자가 고백한 죄를 성소에서 도말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에 초점을 둔다.
거짓 신자들은 체질을 당하여 떨어져 나갈 것이며, 참 신자들의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충성된 우주 앞에서 재확인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죄의 기록들은 도말될 것이다.”*
2) 아사셀의 광야 추방은 황폐된 이 지구에서의 사단의 1,000년 동안의 감금을 표상하는데, 그것은 재림 시에 시작되고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마지막 심판의 두 번째 국면과 부합된다(계 20:4; 고전 6:1-3). 이 천년기의 심판을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이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살펴봄으로써 죄와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를 깨닫게 됨으로 유익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구속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에 관하여 품을 수도 있는 모든 의문들을 풀어줄 것이다(본서 26장 참조).
3) 정결해진 진영은 불이 악인들을 소멸하고 지구를 정하게 할 때, 곧 세 번째의 심판 혹은, 집행 심판의 결과를 표상한다(계 20:11-15; 마 25:31-46; 벧후 3:7-13; 본서 26장 참조).
예언상의 하늘 성소
위에서 우리는 표상과 원형의 관점에서 성소를 살펴보았다. 이제 예언 가운데서 그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하늘 성소의 기름 부음. 다니엘 9장의 70주일의 예언은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의 시작을 가리켰다. 490년 기간에 이루어질 마지막 사건들 중 하나는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었다(단 9:24; 본서 4장 참조). 지극히 거룩한 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코데쉬 코데쉼”(qodesh qodeshim)은 사실상 지성소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성소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번역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지상 성소의 시작에 있어서 성소가 그 봉사를 위하여 바쳐지도록 거룩한 기름으로 부음을 받은 것처럼 하늘 성소의 시작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을 위하여 그것을 봉헌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 직후에 승천하심으로(단 9:27)* 우리의 대제사장이요 중보자로서의 그분의 봉사를 시작하셨다.
하늘 성소의 정결. 하늘 성소의 정결에 관하여 이야기 하면서 히브리서는,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지상의 성소)은 이런 것들(짐승들의 피)로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것들(하늘의 성소)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히 9:22, 23), 곧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 주석가들은 이 성경의 가르침을 간파했다. 헨리 알포드(Henry Alford)는 “하늘 그 자체가 정결이 필요했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또한 그 정결을 얻었다”*고 말했다.
웨스트콧트(B. F. Westcott)는 “하늘에 있는 것들일지라도 그것들이 인류의 미래의 생애의 상태를 구체화하는 한(限) 인류의 타락으로 무엇인가 오염되었으므로 정결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상 성소의 한르 원형을 정결”케 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가 믿음으로 속죄 제물 위에 놓여지고 상징적으로 지상의 성소로 옮겨졌던 것처럼 새 언약 아래서는 회개한 자들이 고백한 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위에 놓여진다.*
그러므로 표상적인 대속죄일 동안에 지상 성소의 정결이 거기에 축적되었던 죄를 제거한 것처럼 하늘의 성소는 하늘 책에 있는 죄의 기록을 최종적으로 도말함으로써 정결해진다. 그러나 기록들이 최종적으로 깨끗해지기 전에 누가 회개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결정하기 위하여 그것들이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성소의 정결에는 조사 혹은 심판*의 사업이 포함되는데, 그것은 심판 날로서의 대속죄일의 성격을 충분히 반영한다.* 누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누가 잃어버린 바 될 것인가의 결정을 실증하는 이 심판은 재림 전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재림 때에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계 22:12)줄 상급을 가지고 오시기 때문이다. 그 때에는 또한 사단의 비난에 대한 대답도 이루어질 것이다(계 12:10 참조).
진정으로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의 피를 주장한 모든 사람은 용서를 받았다. 이 심판 때에 그들의 이름을 불리어지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그들의 죄가 도말된 것이 확인되고, 그들은 영생을 얻기에 합당함을 인정받는다(눅 20:35). 예수님은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고 말씀하셨다.
선지자 다니엘은 이 조사 심판의 성격을 알려준다. 작은 뿔로 표상된 배교의 세력이 하나님께 참람된 일과 지상에 있는 그분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동안(단 7:8, 20, 21, 25), 왕좌가 놓이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을 주재하신다. 이 심판은 하늘 성소의 보좌실에서 이루어지고 수많은 하늘 증인들이 배석한다. 심판을 베풀 때, 책들이 펴지고 조사하는 절차가 시작된다(단 7:9, 10). 이 심판이 있은 후에야 비로서 배교의 세력이 멸망을 당한다(단 7:11).*
심판의 시기. 그리스도와 하늘 아버지가 다같이 조사 심판에 관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그분은 “인자”로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 곧 하나님 아버지께 와서 그분 앞에 서신다(단 7:13).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신 이래로 하나님 앞에서 대제사장이요 우리의 중보자로서의 직임을 수행해 오셨다(단 7:25). 그러나 이 때에 그분의 나라를 받기 위하여 오신다(단 7:14).
1.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가 가리워짐. 다니엘 8장은, 선악의 대쟁투와 하나님의 마지막 승리에 관하여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장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의 시작과 하늘 성소의 정결 사이에서, 하나님 지상 세력이 그리스도의 봉사를 방해할 것을 알려준다.
이 이상에 나타난 수양은 메대 바사(Medo-Persia)제국을 나타냈고(단 8:2), 그 두 뿔 중에 나중에 나온 뿔이 더 큰 것은 분명히 그 제국의 두 국면을 묘사하는데, 그 나라의 더욱 우세한 왕조인 바사가 나중에 나타난 것을 의미한다. 다니엘이 묘사한 바와같이, 이 동방의 왕국은 그 세력을, “서와 북과 남을 향하여”(단 8:4) 크게 확장하였다.
서편에서부터 오는 수염소는 헬라를 표상했고, 그 큰 뿔은 첫째 왕 알렉산더 대왕을 나타냈다(단 8:21). 서편에서 온 알렉산더는 신속히 바사(Persia)를 정복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몇 년 후에 그의 왕국은 카산더(Cassander), 리시마쿠스(Lysimachus), 셀류쿠스(Seleucus), 프톨레미(Ptolemy)의 “네 나라”로 분열되었다(단 8:8, 22).
“이 네 나라 마지막 때에”(단 8:23), 다른 말로 하면 분열된 헬라 제국의 마지막 때에 “작은 뿔 하나가”(단 8:9) 일어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전 2세기에 짧은 기간 동안 팔레스틴을 지배한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가 예언의 이 부분의 성취라고 생각한다. 많은 개혁자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이 작은 뿔을 이교 로마와 법왕 로마를 막론한 로마로 규명했다. 이 후자의 해석이, 다니엘이 자세히 설명한 바와 꼭 맞으며, 전자의 해석은 부합되지 않는다.* 다음의 점들을 생각해 보라.
1) 작은 뿔의 세력은 헬라 제국의 멸망 때부터 “마지막 때”까지 계속된다(단 8:17). 법왕 로마와 이교 로마를 포함한 로마인이 이 기간에 꼭 해당된다.
2) 다니엘 2, 7, 8장의 예언들은 서로 일치한다(본서 320페이지에 있는 예언적 평행 도표를 참조하라). 다니엘 2장의 신상의 네 금속과 다니엘 7장의 네 짐승은 동일한 세계 제국, 곧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로마를 나타낸다. 철과 진흙으로 된 발과 넷째 짐승의 열 뿔은 다같이 로마의 분열을 나타내는데, 그 나라들은 재림 때까지 존재할 것이다. 두 예언이 모두 로마를 헬라의 후계자요 재림과 마지막 심판 전에 존재할 마지막 제국으로 지칭했음을 주목하라. 다니엘 8장의 작은 뿔도 동일한 위치에 부합된다. 그것은 헬라의 뒤를 이어 등장했고, 또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멸망되거나 혹은 “사람의 손을 말미암지 않고 깨어”(단 8:25, 2:34)진다.*
3) 메대 바사는 “강대하더라”고 일컬어졌고, 헬라는 “심히 강대하여 가더라”고 묘사되었고, 또한 작은 뿔은 “심히 커지더라”고 서술되었다(단 8:4, 8, 9). 가장 큰 세계 제국들 중 하나인 로마는 이런 설명에 부합된다.
4) 오직 로마만이 예언에 묘사된 그대로 그 제국을 남편(애굽)과 동편(마케도니아와 소아시 아)과 “영화로운 딸” (팔레스틴)으로 확장했다(단 8:9).
5) 로마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군대의 주재”, “만왕의 왕”을 대적하여 일어섰다(단 8:11, 25). 그리스도의 성소는 말할 것도 없고, 그분과 그분의 백성을 대항하여 로마의 세력은 가장 무서운 전쟁을 했다. 이 묘사는 이교 로마와 법왕 로마에게 다같이 해당된다. 이교 로마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파괴했는가 하면, 법왕 로마는 인간들의 중보를 통하여 용서를 제공하고자 의도된 사제직분으로 대치함으로써 하늘 성소에서의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와 중보 봉사(히 8:1, 2)를 효과적으로 흐려버렸다.*(12장 참조). 이 배교의 세력은 왜 성공을 거두어 왔다.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단 8:12)였기 때문이다.
2. 회복과 정결과 심판의 시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에 관한 진리가 무한정 가려지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성실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남녀들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부흥시키셨다. 종교 개혁 때에 우리의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을 부분적으로나마 발견하자 그리스도계에는 큰 부흥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에 관한 더 많은 진리가 계시돼야 했다.
다니엘의 이상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직무가 그분의 계속적인 중보 사업에 부가해서 정결과 심판을 위한 특별한 업무를 시작하실 때인(히 7:25)* “정한 때 끝”(단 8:17)에 특별히 두드러지게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다니엘의 이상은, 그리스도께서 대속죄일 의식의 원형에 해당되는 봉사, 곧 조사 심판과(7장) 성전의 정결 사업을 언제 시작하실지를 명시했다.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단 8:14).* 이 이상은 마지막 때에 관한 것이므로 여기에 말하는 성소는 지상의 성소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지상 성소는 주후 70년에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늘에 있는 새 언약의 성소-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봉사하시는 장소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2300일, 혹은 “2,300주야”는 히브리 원어상으로 볼 때 무엇을 말하는가?* 창세기 1장에 의하면 “주야”는 하루이다. 본서 4장과 12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상징적 예언의 기간은 역시 상징적이다. 즉 예언상 하루는 1년이다. 그러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세기를 통하여 믿어온 바와 같이, 다니엘 8장의 2,300일은 2,300년에 해당된다.*
1) 다니엘 9장은 다니엘 8장을 풀이하는 열쇠가 됨.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상을 깨닫게 하”도록 가브리엘 천사에게 명령하셨다(단 8:16). 그러나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다니엘은 앓게 되었고 가브리엘은 설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장의 끝에서 다니엘은, “내가 그 이상을 인하여 놀랐고 그 뜻을 깨닫는 사람도 없었느니 라”(단 8:27)고 말했다.
이런 장애 때문에, 가브리엘은 그 기간, 곧 그가 아직 설명하지 못한 이상의 부분에 관한 설명을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다니엘 9장은, 그가 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 8장과 9장은 서로 연결되며, 후자는 2,300주야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가 된다.*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단 9:23). 여기에서 그는 2,300주야의 이상으로 되돌아가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니엘 8장의 이상을 구성하는 시간적 요소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왜 그가 70주일의 예언을 가지고 설명을 시작하는지를 밝혀준다.
70이레 혹은 490년은 유태인과 예루살렘을 위하여 “정해졌다”(단 9:24). 기본이 되는 히브리어 동사는 하타크(chathak)이다. 비록 이 동사가 성경에 단 한 번만 사용되었을지라도 그 의미는 다른 히브리어 자료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게세니우스(Gesenius)가 쓴 유명한 히브리어-영어 사전은 그것이 “끊어내다”, “분리하다”는 의미라고 적절히 서술했다.*
이런 배경에서, 가브리엘의 설명은 매우 뜻 깊은 것이다. 그는 490년이 보다 긴 2,300년의 기간에서 끊어내야 한다고 다니엘에게 말한다. 가브리엘은 490년의 기산점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단 9:25)라고 지적하는데, 그것은 기원전 457년, 곧 아닥사스다(Artaxerxes)왕 제7년에 해당한다(4장 참조).*
490년은 주후 34년에 끝났다. 그리고 2,300년에서 490년을 끊어내면 1810년이 남는다. 2,300년은 주후 34년 이후 1810년이 지나야 하므로 1844년까지 이르게 된다.*
2)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보다 완전한 이해. 19세기 초기에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감독교, 회중교 등을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니엘 8장의 예언을 진지하게 연구하게 되었다.* 이 모든 성경학자들은 2,300년의 끝에 매우 중요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작은 뿔의 세력과 성소에 관한 그들의 이해에 따라 그들은 이 예언의 기간이 교회의 정결, 팔레스틴과 예루살렘의 해방, 유대인의 복귀, 터어키나 모슬렘 세력의 몰락, 법왕권의 붕괴, 참 예배의 회복, 복천년의 시작, 심판의 날, 불로 말미암는 지상의 정결, 재림등으로 끝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예언들 중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고, 그것들을 믿는 자들은 모두 실망했다. 그리고 그들의 실망의 쓰라림의 강도는 예상된 사건의 성격과 비례했다.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1844년에 오실 것으로 기대했던 자들의 실망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틴으로 돌아올 것으로 바라보던 자들의 실망보다 훨씬 더 아픈 것이었다.*
실망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예언의 연구를 포기하거나 이런 결론에 이르게 한 역사주의적 예언 해석 방법에서 돌아섰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많은 기도와 열성으로 이 예언과 성소 문제를 계속 연구하고, 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심을 끊임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의 연구는 그분의 그같은 봉사에 대한 풍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음으로 보상을 받았다. 그들은 초대 교회와 종교 개혁 당시의 예언적 신앙이 여전히 효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예언적 시간 계산은 정말로 옳았다. 2,300년은 1844년에 끝났다. 그들의 실수와 그 당시의 모든 해석자들의 실수는 그 예언적 기간의 끝에 일어날 사건에 관한 오해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에서 오는 새 빛은 그들의 실망을 희망과 기쁨으로 바꾸었다.*
성소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그들이 연구함에 따라, 1844년에 그리스도께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앞으로 나아오셔서 하늘 성소에서의 그분의 대제사장 봉사의 마지막 부분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봉사는 다니엘 7장이 재림 전 조사 심판으로 묘사하는 대속죄일의 성소 정결의 원형이었다.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에 대한 이같은 새로운 통찰은 “역사적 그리스도인 신앙에서 떠나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로 그 신앙의 논리적 귀결이요 필연적 완성이다. 그것은 단순히 세상에 대한 그 증거의 마지막 부분에 있어서 영원한 복음을 특징짓는 예언된 강조점의 마지막 때 모습이자 성취이다.”*
대쟁투에서의 의미
다니엘 7장과 8장의 예언들은 하나님과 사단간의 대쟁투의 마지막 결과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내용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품성의 옹호. 작은 뿔의 활동을 통하여 사단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 세력의 활동은 하늘의 성소, 곧 하나님의 정부의 심장부를 훼손하고 짓밟아 왔다. 그러나 다니엘의 이상은 하나님이 작은 뿔과 사단 자신에게 유죄 선고를 내리게 해주는 재림 전 심판을 가리킨다. 갈바리의 빛 가운데서 사단의 모든 도전은 반박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옳다는 것과, 그분이 죄악 문제에 전혀 책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할 것이다. 그분의 품성은 논쟁의 여지가 없어지고, 그분의 사랑의 정부는 재확인될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옹호. 그 심판은 배교적인 작은 뿔의 세력을 정죄하는 반면,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단 7:22)한 것이 된다. 진실로 이 심판은 우주 앞에서 하나님을 옹호할 뿐 아니라 그분의 백성도 옹호한다. 비록 성도들이 여러 세기를 통하여 겪어온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신앙 때문에 멸시를 받고 핍박을 당해 왔을지라도 이 심판은 그런 것을 바로 잡아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눅 12:8, 9; 계 3:5 참조).
심판과 구원. 조사 심판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구원을 위태롭게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진실한 신자들은 그분을 중보자로 신뢰하며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산다(롬 8:34). 그들의 보증은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는 말로 약속되어 있다.
그러면 재림 전 심판은 왜 있는가? 이 심판은 삼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주를 위하여 있다. 곧 사단의 송사에 대답을 해주고, 타락하지 않은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이 진정으로 회개한 자들만을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해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록책들을 펴시고 편견없이 살펴보게 하신다(단 7:9, 10).
인간은 다음에 열거하는 세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1)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하는 악인, (2)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면서 사는 진실한 신자, (3) 진실한 신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자.
타락하지 않은 존재들은 첫째 부류를 쉽게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진실한 신자이며, 누가 진실하지 않은 신자인가? 두 부류의 사람들이 다 같이, 지금껏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눅 10:20; 빌 4:3; 단 12:1; 계 21:27). 교회 자체도 참 신자와 거짓 신자, 곧 알곡과 가라지를 다 수용하고 있다(마 13:28-30).
타락하지 않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전지하지 않다. 그들은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진실한 자들을 거짓된 자들에게서 분리시키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주에게 신실한 신자를 구원하는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심판이 필요하다. 문제는 하나님과 우주와의 문제이지 하나님과 진실한 자녀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므로 기록책을 펴서 믿음을 가졌노라고 공언하며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에 관한 일체의 사항이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관대한 복음의 초청에 응한 혼인 잔치의 손님들의 비유를 통하여 이 심판을 묘사하셨다.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택하는 사람 모두가 진실한 제자는 아니기 때문에 임금은 손님을 살펴보고 누가 혼인 예복을 입었는지 살피러 나온다. 이 예복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자들이 소유하게 될 순결하고 흠없는 품성이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가 교회에 주어진다(계 19:8; 엡 5:27). 성경은 깨끗한 세마포를 ‘성도들의 옳은 행실'(계 19:8)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 곧 그분의 흠 없는 품성인데, 믿음으로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임금이 손님들을 살펴볼 때, 복음의 초청을 통하여 그처럼 너그럽게 제공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자들만이 진실한 신자로 가납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 공언하면서 불순종의 생애를 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지 않는 자들은 생명책에서 도말될 것이다(출 32:33 참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고백한 모든 사람이 조사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관념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다. 바울은 어느 날인가 자신이 심판을 받을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9)라는 소망을 나타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모든 사람은 구원이 보장된다. 재림 전 마지막 심판의 장면에서 진실한 신자들, 그리스도와 구원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 자들은 타락하지 않은 우주 앞에서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얼마나 많은 선한 일을 행동을 했느냐는 것을 기준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만 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보장하실 수 없다(마 7:21-23 참조). 그러므로 하늘의 기록들은 단순히 진실한 자들을 거짓된 자들에게서 골라내는 자료 이상의 것이다. 그것들은 또한 천사들 앞에서 진실한 신자들을 확증하는 근거도 되는 것이다.
“성소의 교리는 신자와 그리스도 사이의 보증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떠받쳐 준다. 그것은 신자의 마음에 구원의 계획을 예증해 주고 분명히 설명해 준다. 회개하는 그의 마음은 성소의 희생 제도를 통하여 표상된 바대로 그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즐거워한다. 더 나아가서 그의 믿음은 살아계신 그리스도, 곧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에서 그의 제사장적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믿음의 의미를 발견한다.”*
준비해야 할 시기.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마지막 봉사에 대한 기쁜 소식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온 세계에 전해지기를 바라신다. 이 기별의 중심은 “그의(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계 14:7)기 때문에 긴급하게 전해져야 할 영원한 복음이다. 이 호소는 하나님의 심판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경고한다.
오늘 우리는 원형적(原型的)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날에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도록 요구받은 것처럼(레 23:27),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백성들이 마음에서 우러난 회개를 경험하도록 요구하신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은, 이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 동안에 하나님과 그들의 동료 인간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해야 한다(계 14:7).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기는 사라져가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언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실지 아무도 모르다. 그리스도께서는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막 13:33)고 말씀하셨다.
비록 우리가 원형적 대속죄일의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희생 제물과 제사장의 이중 역할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성소에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