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보아스, 공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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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룻 4:4)

보아스는 성문에서 장로들을 부르고 또 나오미와 가장 가까운 친족을 부른 후 죽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일을 거론합니다. 처음에 그 사람은 엘리멜렉이 남겨둔 기업을 얻는다는 생각에 자신이 기업을 무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업을 무르려면 나오미를 봉양하고 룻도 아내로 맞아들여야 합니다.
손해 보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신은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사회는 얼마나 각박하고 삭막하기만 하지요.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그 사람은 나오미가 가진 땅에만 관심이 있었지요. 그러나 룻을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고 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룻이 이방 여인인 데다가 가난한 과부라는 사실을 알고, 금전적으로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크다는데 생각이 이르자 “나는 내 권리를 포기하겠다”라고 말합니다. 계산이 빠른 그 사람이 얼마나 정확하게 계산했겠습니까? 그건 금전적인 측면에서 분명히 손해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주저함 없이 자신이 그 손해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합니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 삶에서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을 통해서 보아스가 받아들인 손해의 아름다운 결과를 봅니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오벳을 낳고,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보아스가 받아들인 손해의 결과는 다윗이라는 걸출한 믿음의 영웅입니다. 반대로 보아스가 그 손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윗이라는 믿음의 영웅 이야기를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정점에 서 있는 다윗은 절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그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고, 다윗의 보좌를 이을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즉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은 아브라함이고, 그 끝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리고 그 다윗은 보아스가 가난하고 비천한 룻을 아내로 맞이한 결과입니다. 만사를 재정적 손익관계로 본다면 돈은 모을지언정, 주변에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가운데에는 나를 진정으로 도와줄 사람도 있습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