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월요일 장년 교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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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들의 의무임을 성경 곳곳에 기록해 두셨다.

성경의 기자들은 그들의 글 속에 가난한 자, 나그네, 과부 그리고 고아들을 위한 하나님의 대책을 기록해 두었다. 이와 같은 기록은 시내산에서 허락된 말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 할지니라”(출 23:10, 11).

레위기 23:22와 신명기 15:11을 읽어보라. 당시의 상황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다를 수 있지만, 이 성경절에서 어떤 원칙을 배워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여기 나타난 “형제”는 동료 이스라엘 백성들 또는 동료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우리는 “형제”를 “네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로 이해한다. 시편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시 82:3, 4). 이 말씀은 우리에게 그저 음식을 나누는 것 이상의 책임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
성경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자들을 위한 약속 또한 기록되어 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잠 28:27).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잠 29:14). 다윗 왕은 이렇게 기록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시 41:1). 때로 사람들이 잊기도 했지만,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항상 매우 중요한 우선순위였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 진화론”이라고 알려진 이론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할 어떤 도덕적 의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경향은 현대 사회에 이르러 특별히 영국에서는 더 두드러졌다.) 그대신 “사회 진화론자”들은 강자가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되는 자연의 힘을 따랐다.

(이어서) 왜냐하면 이들은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극빈자를 돕는 것은 그들의 수를 증가시켜서 국가 전체의 사회적 구조를 약화시킬 뿐이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에 해롭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주장이지만, 이런 결론이야말로 진화론과 그것이 주장하는 잘못된 가르침이 결국 어디에 도달하게 될 지 보여주는 것이다.

<묵상>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가난한 자를 돌보라고 부탁 하셨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교훈>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들의 의무임을 성경 곳곳에 기록해 두셨다.

<적용>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가 담긴 복음이 우리가 다른 모든 사람을 대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쳐야 합니까?

<영감의 교훈>
고통과 가난에 대한 우리의 의무 – “각 계층에 있는 고통 당하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필요를 깨닫게 될 때 가능한 한 그들을 구제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이 비유(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원칙이 밝혀져 있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것을 실천하면 좋을 것이다. 먼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의 현실적 필요성을 채워주고, 그들의 신체적 결핍과 고통을 구해 주라.”(구호 봉사, 118)

<기도>
세상은 갈수록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고 그 속에 사는 저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때가 많음을 인정합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나누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