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월요일 장년교과] 절하라는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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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단 3:5~6).

단 3:8~15과 계 13:11~18을 읽어보라. 우리는 다니엘의 시대에 일어난 일과 미래에 일어날 일 사이에 어떤 유사성을 볼 수 있는가?
‘두라’라는 이름은 아카디아어로 ‘벽으로 둘러싸인 곳’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두라 평지에 세워진 금신상은 거대한 성소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가까이 있었던 풀무는 제단을 연상하게 한다. 바벨론 음악은 예배 의식의 일부였다. 마치 숭배 의식의 완전성과 유효성을 전하려는 듯이 일곱 개의 악기가 열거되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그분의 권위에 헌신하기보다 새로운 생활방식과 새로운 사상들을 수용하고 우리의 충성심을 바벨론 제국의 현대 계승자들에게 바치라는 요구가 사방에서 빗발치고 있다. 세상의 유혹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최종적인 충절을 창조주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언의 달력에 따르면 우리는 지구 역사의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 계시록 13장은 지구 거주민들이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리라고 예고한다. 그 짐승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계 13:16) 할 것이다.
6개 범주의 백성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이 짐승의 우상에게 충성을 바친다. 짐승의 숫자인 666도 6을 강조한다.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은 마지막 때에 종말론적인 바벨론이 행할 일에 대한 예표에 불과했다(단 3:1에서 6과 60이 사용됨).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화에서 발생한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세상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훈 : 두라에 세워진 우상에게 경배하라고 강요했던 사건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절하고 거짓 예배에 동참하라고 강요할 마지막 시대의 사건을 예고한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마지막 때에 어떻게 예배를 강요하는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이 처음에는 일요일 휴업을 강제하는 법령의 형태로 제시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진정한 안식일 제도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지 교황권에 순종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로마교의 명령과 다름이 없는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은 이로써 하나님보다 법왕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로마교에 복종하고 로마교가 제정한 제도를 강제로 시행하는 권세에 복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로마교에 복종하는 표, 곧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449).

적용 :  그대가 종교 자유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동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영감의 교훈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할 수 있는 세속적 혹은 도덕적 권리가 느부갓네살에게 없음은 그에게 금 우상에게 절하기를 거절한 자들을 모두 불 속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을 내릴 권리가 없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저희가 섬길 자를 택하도록 놔두신다”(선지자와 왕, 510).

기도
아버지, 저의 진로를 위협하고, 생계를 위협하며, 신앙을 위협하는 이 모든 불공정한 제도와 억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강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참되신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