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단 2:45).
어차피 망할 텐데
자기 파멸로 인해 어차피 무너질 신상을 돌이 내려와서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하기 위해서 파괴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스스로 무너질 정도로 죄악이 범람한 세상에서는 의인조차도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통해 구원받을 사람과 죽음의 형벌을 받을 사람을 구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바벨론 성이 ‘무너졌도다’라고 말하며 거기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기 파멸의 길에서 나오라고 호소합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칠십 년 기한이 차면 바벨론에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멸로 가는 존재들을 돌이키게 하여 희망과 구원을 제공합니다. 신상은 무너지고 사라질 것이지만 심판의 돌은 자기 파괴의 길에서 돌이키는 자들에게 구원을 제공합니다.
반석 되신 분
흙 이미지가 창조 이야기에서 빌려온 것이라면, 돌 이미지는 출애굽기와 시편과 복음서의 반석 이미지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 돌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수를 제공했던 반석이고, 버려졌다가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된 돌처럼 이미 세상에 와서 세상을 돌보고 있던 돌이었습니다.
심판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이미 진흙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따라다니며 보호하시는 반석으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여행에 동행하셨던 분이십니다. 그 반석은 자멸하는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 반석은 지금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상을 세우는 데 사용된 든든해 보이는 금, 은, 동, 철이 아닙니다. 권력, 신분, 성공, 성취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돌, 우리에게 다시 임할 반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44절).
이 꿈은 참됩니다(45절). 재림교회의 다니엘 2장 해석도 참됩니다. 하나님은 장래 일을 느부갓네살에게 가르쳐 주셨을 뿐 아니라 오늘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장래 일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기도) 구원하시기 위해 심판하시는 그분을 만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