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창42:1-2)
일곱 해나 계속되는 극심한 흉년에 가나안 땅도 먹을 것이 씨조차 말라 버립니다. 그런데, 소문에 애굽에는 양식이 있다 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도 야곱의 아들들은 서로 멀뚱멀뚱 바라볼 뿐 양식을 구하러 갈 생각을 하질 않습니다. 혹시 오늘 우리도 야곱의 아들들처럼 머뭇거리며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는지요? 그 소식을 듣고도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께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양식이 있음을 듣고도 머뭇거린 건 돈이 없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십여년 전 그 일 말입니다… 이십여년 전 그때 울면서 애걸(창 42:21)하는 동생이 종으로 끌려 간 곳이 애굽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나니 요셉의 형들은 기근보다 더한 극심한 죄책감에 애굽 소식을 듣고도 애굽에 갈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극심한 죄책감에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이 혹시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아버지를 등지고 아버지를 반역하며 심지어는 십자가에 못을 박는 패역한 우리의 죄가 생각이 나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께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 죄책감에 머뭇거리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사탄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 대적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흉악한 죄를 들춰내면서 ‘네가 그러고도 하나님께 가려느냐?’ 비난하는 것입니다.
원수 대적 마귀가 우리 앞에 들춰내는 우리의 흉악하고 흉악한 죄, 그 죄는 사실입니다. 그 죄를 어찌 ‘아니라’ 부인을 하겠는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죽으셨습니다. 바로 그 죄, 우리의 흉악한 바로 그 죄 때문에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미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아버지를 등지고 집나간 우리는 아직 창기들과 함께 주지육림 속에 있건만, 이미 우리를 용서하신 아버지는 이미 벌써 ‘제일 좋은 옷’(눅 15:22)을 준비해 놓으시고는 집나간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날마다 목놓아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내게 등을 돌린 백성을 맞이하려고 하루 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사 65:2, 쉬운성경)
그 아버지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니, 행여라도 원수에 속아 죄짐을 지고서 머뭇거리지 말고 일어나 어서 예수께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애간장이 녹도록 우릴 기다리시니 오늘도 일어나 예수께로 갑니다. 이 모습 이대로 예수께로 갑니다. 오직 예수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