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에 무덤을 찾은 사람들은 그분의 무덤이 열려 있고,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 요한은 천이 개어진 것을 보고 그분이 부활하신 것으로 믿었다.
요한복음 20:1-7을 읽어 보라. 이 구절에 기록된 내용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금요일 늦은 오후에 돌아가시고 일요일에 일찍 부활하셨다. 그분을 장사하던 때가 안식일이 가까웠기 때문에(요 19:42) 장례 절차는 서둘러 진행되었고 완전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예수님을 매우 사랑하였지만 제자들은 안식일을 지키며 무덤에 가지 않았다(막 16:1, 눅 23:56). 안식일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에 여인 몇 명이 향품을 사서 무덤에 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돌이 굴려져 있었고 무덤은 비어 있었다.
일찍 무덤에 온 사람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말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갔다. 두 제자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요한이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했고 허리를 굽혀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예수님을 감쌌던 세마포가 보였다. 그러나 그는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베드로는 안으로 들어가서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천도 보았지만, 나머지 천들과 함께 있지 않았고 그것은 개어져서 따로 놓여 있었다.
요한복음 20:8-10을 읽어 보라. 얼굴을 덮었던 천이 개어져 있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간 후에야, 요한도 무덤에 들어갔는데 요한복음 20:8은 그가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 왜 요한은 무덤에 놓여 있는 수의와 따로 접혀서 놓여 있는 머리를 덮었던 천을 보고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믿었는가?
(이어서)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무덤이 왜 비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도굴꾼들이 다녀간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세 가지 이유로 부적절하다. 첫째, 마태복음은 무덤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고 말하므로(마 27:62-66) 도굴이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둘째, 도굴범은 일반적으로 썩어가는 시체가 아니라 귀중품을 훔친다. 셋째, 도굴꾼은 급하게 서두르기에 수의를 접지 않는다. 따라서 요한은 머리를 쌌던 천이 접힌 것을 보고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믿을 수 있었다.
<교훈> 일요일 아침에 무덤을 찾은 사람들은 그분의 무덤이 열려 있고,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 요한은 천이 개어진 것을 보고 그분이 부활하신 것으로 믿었다.
<묵상> 예수님의 부활의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얼굴을 덮었던 천이 개어져 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적용> 예수님을 사랑하였지만 안식일을 지키며 기다렸던 제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의 모본을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증거를 보고 믿은 요한 – “제자들은 급히 무덤에 달려가 마리아의 말이 사실인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수의와 수건을 보았을 뿐 저희 주님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그분이 살아나셨다는 증거가 있었다. 수의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이 아니요, 주의 깊게 개켜 있었고 각각 제자리에 있었다. 요한은 ‘보고 믿’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죽음에서 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은 아직 깨닫지 못하였으나, 이제 부활을 예언하신 구주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었다”(시대의 소망, 789).
<기도> 십자가의 고난 뒤에 부활하시고 소망의 약속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저의 삶에도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니 저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