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찾아온 기회
바벨론에 끌려온 포로들의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될지, 무슨 일을 하며 목숨을 부지해야 할지, 내일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는 처지였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가 결정할 수 없는 처지였던 다니엘에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4절)서 쓸 만하다는 이유로 다니엘에게 멋진 음식과 잠자리가 제공되었습니다. 그리고 당대 최고의 선진국에서 최고 학문을 전액 장학금으로 배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장밋빛 미래가 그 앞에 펼쳐졌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궁에 있으면서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힘들지만, 먹을 것도 나름 가려먹었을 것이고 안식일을 구별하기 위해 여러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야말로 신앙 좋고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는 다니엘이 왜 갑자기 뜻을 정한다고 유난을 떠는 것일까요?
다니엘이 바벨론에 가게 된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겨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가 아니라 정복자 겸 선교사 자격으로 바벨론에 와야 했습니다. 유프라테스강 지역은 원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약속에 들어있었습니다. “방향을 돌려 행진하여…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신 1:7).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별을 들어야 했습니다(창 12:1~3).
다니엘이 바벨론에 온 것은 생존이 아닌 사명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궁에 자신이 이루어야 할 고유한 사명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뜻을 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사명을 위해서는 뜻을 정해야만 했습니다.
뜻을 정한 다니엘은 열심히 이방 언어와 이방 학문을 배웠습니다. 우상의 학문이라고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벨드사살이라는 이름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상 제물은 거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성취하고자 우상을 의존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명의 성취를 도우실 분은 오직 사명을 주신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 사명을 기반으로 한 뜻을 정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