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과 아버지와 성령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그 관계를 그들도 가지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신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기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기도는 고별 설교를 마무리 짓는다. 예수님은 인류를 회복시켜 궁극적으로 하나님과의 원래의 인격적 관계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이행하라고 주신 표징을 충실히 수행하셨다. 그분은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셨다.
예수님은 곧 이 땅을 떠나실 것이었고 그 전에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나누고 싶어 하셨다. 그분은 제자들이 자신과 아버지와 성령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이해하기를 원하셨다. 또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가졌던 것과 같은 인격적인 관계를 제자들도 가지기를 원하셨다.
요한복음 17:1-26을 읽어 보라. 이 장에서 예수님과 아버지 그리고 제자들 사이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있기를 바라는 그분의 소망을 표현하는 단어나 구절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요한복음 17장을 읽으면서 연합과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초점을 가지고 읽는다.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분 그리고 모든 사람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훨씬 더 중요한 사랑과 진리 사이에 관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요 17:3) 사람이 자의적으로 생각하거나 유추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고,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으며,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요 17:6, 8) 안다고 하시고,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계시하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많았기 때문에 이 계시는 매우 중요하다.
(이어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이 사명을 얼마나 성실하게 여기셨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을 온전히 대변하셨다. 진리가 중요하지 않다면 왜 그렇게까지 애쓰셨겠는가?
예수님은 극심한 고난의 삶을 사셨고 결국 종교 당국으로부터 배척당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의 무관심에 시달렸고 때로는 제자들까지도 그분을 외면했다. 제자 중 한 명은 주님을 배신했고, 또 다른 제자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다. 그분은 끝없는 고난을 겪으셨고, 구원하기 위해 오신 바로 그 사람들의 손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교훈>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과 아버지와 성령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그 관계를 그들도 가지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와의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길 원하신다.
<묵상> 사랑과 진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이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어떻게 하면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삶에서 더 잘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교회의 큰 위험은 분열 –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하여 드린 마지막 기도의 요지는 그들 사이에 연합과 사랑이 있도록 간구하는 내용이었다. 십자가의 고민이 그분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을 위하여 간청하지 아니하고 지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추진하도록 위탁받은 자들을 위하여 간청하셨다. 가장 격렬한 시련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가장 큰 위험이 원한과 분열의 정신에서 빚어질 것을 보셨다”(증언 보감 2권, 77).
<기도>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친밀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사이의 갈라진 틈이 있다면 메워주시고 진리를 사랑함으로 우리가 서로 가까워지게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연합하는 기쁨이 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