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애 3:18).
소망이 끊어진 사람
예레미야 애가 3장은 22자의 히브리어 철자가 석 절씩 첫머리에 반복되어 총 66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전과 같은 형식이지만 같은 철자를 세 번씩 사용한 것으로 보아 3장은 애가의 문학적, 신학적 중심이며, 시인이 강조하는 바가 이 3장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의 “고난 당한 자는 나로다”를 직역하면 “나는 고난 당한 남자이다”입니다. ‘남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 ‘게베르’는 전형적인 남성으로 ‘힘센 남자’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힘센 남자가 “여호와의 분노의 매”로 말미암아 고난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본 장에서의 “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나”라는 표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백성을 대표해 고난받는 존재로 내어놓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 백성을 위해서, 대신해서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정도의 고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징벌을 받았지만 소망이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 정도의 징계를 받지 않았으며 소망이 끊어진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라는 말에 신약적 사고를 작동시켜서 ‘예수님’을 대입해 보면 모든 의문이 해결됩니다. 이런 고난을 받으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복을 내버린 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18절)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둘째 사망이라는 진짜 죽음을 당하셨던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소망이 돌아오다
고난 당한 남자는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답즙을 기억하소서”(19절)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고난을 기억하고 낙심합니다(20절). ‘기억하다’의 히브리어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하심을 기억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남자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 가운데서 자신의 고난을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더니(21절) 자신의 고난의 과정이 구원의 과정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고난의 과정’이 ‘낙심의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소망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정으로 ‘소망이 끊어졌던 한 남자’로 인해 인류는 비로소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기도) 소망이 끊어졌던 한 남자로 인해 생긴 소망을 붙잡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