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시 53:5).
거의 같은 시를 쓴 이유?
시편 53편은 시편 14편과 거의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언급된 내용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펴 보니 선을 행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떡 먹듯이 먹어 치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자가 시온에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돌이키실 때에 그들은 기뻐한다.” 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들입니까?
다른 내용이 말하는 것
시편 14편은 하나님의 호칭으로 “엘로힘”과 “여호와”가 각기 3회, 4회 사용된 반면, 53편에서는 하나님으로 보통 번역되는 “엘로힘”만 7회 사용되었습니다. 언약 관계와 관련된 호칭인 “여호와”가 본 시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14편에 비해 53편에 묘사되는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에게서 훨씬 멀어져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방향으로의 의미 강화를 우리는 시편 14편과 중복되지 않는 시편 53편 5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5절).
이 구절에서 “너”가 누구일까요? 14편에서는 악인들이 하나님께서 의인들과 함께 계시는 모습을 보고는 두려워하는데, 여기서는 악인들이 두려움 없이 살다가 “너를” 대항했기 때문에 뼈가 흩어지는 일을 당합니다. 또 “네가” 수치를 당하는 일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일이 묶여서 기술됩니다. “너”가 다윗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악인들의 최종 운명이 “너”로 인해 결정되는 것으로 보아서, “너”는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이신 메시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봅니다.
바로 우리 각 사람의 운명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런데 지각없는 자들은 어리석게도 자기 운명을 결정할 그분이 없다고 하면서 악을 행하다가 망하고 맙니다.
기도) 예수님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