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필리핀 천명한인교회. 1000명선교사훈련원장 전재송 목사가 마이크를 잡고 강의에 한창이다. 전국에서 자원한 13명의 62기 한국인 청년들에게 선교사의 역할과 사명을 강조하는 특강이다.
자리에 앉은 ‘새내기 선교사’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강단을 주시한다.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노트에 꼼꼼히 기록하고, 마음에 들어오는 내용에는 ‘아멘’을 외치며 감동을 표현한다.
전재송 목사는 ‘후배’ 선교사들에게 자신의 과거 경험을 소개하며,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청년들에게 선교사 정신을 불어넣었다.
그는 “우리의 사역은 천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소명이다. 어느 곳으로 파송되든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만을 의지해 도전하며 나아가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승리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마치 다윗의 손에 들린 조약돌과 같은 것”이라고 권면했다.
성경을 펴고 밑줄을 그으며 말씀에 집중했던 선교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전 목사의 목소리에서 여느 때보다 더 진한 진심과 호소가 느껴졌다. 약 2시간의 강의가 끝나자 그는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남모를 한숨을 낮게 내쉬었다. 1000명선교사훈련원장으로서 그의 ‘마지막’ 강의는 그렇게 끝났다.
■ ‘역대급’ 재난 속 현장 지휘하며 상황 수습
전재송 목사는 대전삼육중 교목 재직 중이던 2018년 제7대 원장으로 부름받았다. 2019년 3월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3기 출신인 그는 첫 1000명선교사 출신 원장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인 지원자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등 위기론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그는 침체한 1000명선교사운동에 활력을 일으켰다.
전 목사는 “1000명선교사를 통해 선교정신을 배운 내가 오늘의 청년들에게 그 고귀한 정신을 심어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생각한다”며 직임의 첫발을 뗐다. 자신이 배우고 느끼고 경험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세계를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각오와 함께.
하지만 재임 기간은 녹록지 않았다. 아니, ‘역대급’이었다. 부임 이듬해 1월 훈련원 인근의 따알화산이 폭발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하게 뒤덮인 분진과 주민 대피령 속에도 스태프와 선교사들을 모두 피신시키고, 자신은 캠퍼스를 지키며 상황을 수습했다. 화산 근처에서 사역하던 선교사에게 급히 연락해 몸을 피하도록 지시하고, 교육 중이던 CMM 어린이선교사와 지도교사들의 신변을 안전하게 조치했다.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55기 선교사들을 루손섬 남부 아떼모난 지역의 한 리조트로 대피시켜 사상 초유의 원정교육을 실시하는 등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도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였다. 불안해하는 선교사들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 지원 기다리는 운동에서 양육하는 운동으로
연이어 터진 코로나19 팬데믹도 그를 괴롭혔다. 정부가 마닐라를 포함한 루손섬 일대를 봉쇄하는 극단적 명령을 내리면서 더욱 힘든 여건에 놓였다. 방문과 집회를 하지 못한 채 위축돼 있던 선교사들을 다독이고,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발 빠르게 대처했다. 한국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들의 건강을 지켜주시도록 기도를 호소했다. 놀랍게도 3년 가까운 팬데믹 기간 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선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2022년 8월에는 1000명선교사운동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총괄 지휘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영원히’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 행사에서 그는 “1000명선교사운동은 선교사로 1년을 바친 재림청년들의 살아있는 선교 이야기”라며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영광의 제단을 쌓았다.
선교사들의 간증을 기도력 형식으로 엮은 <마라나타>를 출간한 것도 이즈음이다. 선교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를 기억하고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편찬한 이 책에는 선교사들이 저마다의 선교현장에서 겪은 놀라운 역사와 경험이 먹먹하게 담겨 있다.
지난해부터는 고3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선교사 예비학교’ 과정을 만들어 사역의 지경을 넓혔다. 청소년들이 1000명선교사를 미리 체험해 장래 선교사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기획했다. 미래 선교사를 준비시키는 통로가 된 이 사업은 지원을 기다리는 운동이 아닌, 예비선교사를 양육하는 운동으로의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실제로 이번 62기 선교사에 지난해 예비학교 1기 출신 청년이 지원해 이런 가능성에 싹을 띄었다.
■ 임기 마치는 소회? “모든 게 하나님 은혜”
5년 임기를 마치는 그는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전 목사는 “무수한 사고와 질병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청년들을 지켜주셨다. 주님의 인도와 은혜라는 말씀 외에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원자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는 “복음사업은 결코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매일 느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해 주시고, 재정적으로 도움 주신 분들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시시때때로 필요를 채워주시고 헌신해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 사역에 대한 애정과 확신도 그만큼 커졌다. 전 목사는 “1000명선교사운동은 이 시대 재림청년을 위한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장차 이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하는 가장 효과적 프로그램이다. 거시적 안목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당기는 세계선교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임지를 떠나면서 후임자에 대한 지지와 협력도 당부했다. 그는 “1000명선교사운동은 더 크게 부흥해야 한다. 더 많은 청년이 와야 한다. 신실한 주의 자녀와 청년들을 선교사로 보내주셔야 한다. 원장으로서 나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지만, 이 사업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 신임 원장 한석희 목사님께 더 큰 힘을 실어주시고, 적극적인 관심으로 도와주시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지도자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 일을 위해 마음 모으고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1000명선교사훈련원에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넉넉한 지원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울러 해외에서 고군분투하는 선교사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기도를 보내 달라”고 덧붙였다.
이전에 없던 극한의 상황에서 1000명선교사운동을 이끄는 ‘선장’으로서 폭풍우의 한가운데 서서 막막했던 사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은 그는 이제 충청합회로 복귀해 청주중앙교회에서 목회 사역의 새 페이지를 연다. 17일 이.취임식, 18일 귀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