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일요일 장년 교과] 오천 명을 먹이심

0

유월절이 가까울 무렵 행하신 5,000명을 먹이신 표적은 모세의 경험과 평행구조를 이루며 유대 민족에게 특별한 표적을 통해 당신의 신성을 말한다.

요한복음 6:4, 5에서 사도는 5,000명을 먹인 시기가 유월절에 가까운 것을 부각하며 시작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유월절 어린 양은 장자를 대신해서 죽었으며 이 희생은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죽으실 것을 표상한다. 죄로 인해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 내려졌다. 유월절 양 그리스도는 진실로 우리를 위해 죽임당하셨다(고전 5:7).
“그분께서는 죄의 형벌을 담당하시고 아버지의 얼굴에서 외면당하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분의 심장은 터지고 그분의 생명은 부서졌다. 이 모든 희생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각 시대의 대쟁투, 540).

요한복음 6:1-14을 읽어 보라. 예수님과 모세 사이에 어떤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여기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모세의 사역을 통해 받았던 구원을 상기시킬 만한 어떤 일을 하셨는가?

이 이야기의 많은 세부사항은 출애굽기의 모세와 예수님이 하신 일 사이의 평행구조를 보여준다. 유월절(요 6:4)은 애굽에서의 위대한 구원을 가리킨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것처럼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신다(요 6:3).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하신다(요 6:5, 6). 떡을 공급하신 것(요 6:11)은 만나를 생각하게 한다. 남은 음식을 모으는 것(요 6:12)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모으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와 같은 열두 바구니에 남은 음식이 모아진다(요 6:13).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모세가 예언한 “나와 같은 선지자”(신 18:15)를 떠올리게 하는 세상에 오는 선지자(요 6:14)라고 말한다.

(이어서)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그분의 백성을 구하러 오시는 새로운 모세라는 것을 가리킨다.
즉 요한은 예수께서 단순히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유대 민족이 가진 맥락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본질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신성을 가리키고 계신 것이다.

<교훈> 유월절이 가까울 무렵 행하신 5,000명을 먹이신 표적은 모세의 경험과 평행구조를 이루며 유대 민족에게 특별한 표적을 통해 당신의 신성을 말한다.

<묵상> 이사야 53:4-6과 베드로전서 2:24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에 대해 어떤 위대한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까?

<적용> 그분의 신성은 이 진리와 어떻게 연결되며, 우리가 알 수 있는 진리 중에서 이 진리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표상은 중시하고 의미는 무시한 유대인들 – “유대인들은 멸하는 천사가 애굽의 집들을 칠 때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밤을 기념하여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경축하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유월절 양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고 그 표상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기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분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표상 그 자체를 가장 중요시하는 반면에 그 의미는 무시하였다. 그들은 주님의 몸을 식별하지 못하였다”(시대의 소망, 388).

<기도> 유월절 어린양이시며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보이시고 이루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날마다 먹고 따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