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목요일 장년 교과] 계속 나타나는 주제 –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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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신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한 역설이다.

요한복음 17:1-5을 읽어 보라. 예수께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제 교과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엇을 하시는지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 늘상 일어났던 충돌과 상호작용을 통해 요한복음에 나타난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오늘은 요한복음에서 발견되는 신성하고 우주적인 이야기를 살펴볼 것이다.
요한복음의 서론은 우주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예수님은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지만, 원래 존재하지 않았으나 세상에 나타난 모든 것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창조된 것이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요한복음은 계속해서 성육신을 통해 사람이 되신 그분의 영광에 대해 기록한다(요 1:14). 요한은 ‘영광’(doxsa, 밝음, 찬란함, 명예)과 ‘영화롭게 하다’
(doxsazō, 찬양하다, 존경하다, 영화롭게 하다)라는 용어 모두를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받는 것과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해주시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개념은 그분의 때, 즉 그분의 죽음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요 2:4, 7:30, 8:20, 12:23-27, 13:1, 16:32, 17:1 비교). 십자가가 바로 그분의 영광의 때이다.
십자가는 고대 로마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사형 집행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 개념은 실로 역설적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라는 이 놀라운 부조화는 그 속에 인간의 이야기와 하나님의 계획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인성의 측면에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는 나약하고 멸시받는 범죄자로서 고통스럽게 죽으셨다.

(이어서) 십자가의 이러한 인간적이고 어두운 면은 특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잘 나타나 있다(마 27:46, 막 15:34).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십자가의 영광을 잘 드러낸다(눅 23:32-47, 요 19:25-30). 십자가는 구원과 자비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아버지께 드린 곳이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영광이 예수님이 겪으신 가장 깊은 수치, 즉 세상 죄를 짊어지심으로 빛나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이고 신비한 일인가!

<교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지신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한 역설이다.

<묵상>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하는 그런 극적인 일이 있어야 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이것은 우리에게 죄가 얼마나 나쁜지, 그리고 우리가 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엇을 말해줍니까?

<영감의 교훈> 영광도 함께 – “희생의 십자가를 예수님과 같이 지는 자들은 모두 그분의 영광을 나누어 가지게 될 것이다. 당신의 멸시와 고통을 통하여 그분의 제자들이 함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 예수님의 기쁨이었다. 그들은 그분의 자기희생의 열매이다. 그들 가운데 그분의 품성과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그분이 받으실 보상이며, 영원무궁한 기쁨이 될 것이다. 수고와 희생의 열매로써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나누는 이 기쁨은 다른 사람의 심령과 생애에도 나타날 것이다”(시대의 소망, 624).

<기도> 십자가를 통해 나타난 당신의 영광 앞에 겸손히 무릎 꿇습니다. 주님, 저는 어떤 영광을 바라고 꿈꾸며 매일을 살고 있습니까? 저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고귀한 영광 앞에서 부족한 종에게 은혜를 부어 주시고, 변화시켜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