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수요일 장년 교과] 철회된 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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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결코 마르지 않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혜택을 거부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때 그것을 상실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며 언제나 조건 없이 베풀어 주신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랑을 거부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지만, 이것도 오직 우리가 그 어떤 일조차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당신의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기꺼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렘 31:3).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요한일서 4:7-20을 읽으며 특별히 7절과 19절을 주의 깊게 읽어 보라. 이 구절은 먼저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분을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지만, 모든 사랑의 근거와 원천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용서하지 않는 종에 대한 그리스도의 비유는 이 진리를 잘 예증한다(마 18:23-35).
우리는 마태복음 18장의 비유에 등장하는 종이 주인에게 빚진 것을 결코 갚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종은 주인에게 만 달란트를 빚졌다.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한다. 한 데나리온은 일반적인 노동자가 하루 일한 대가로 받는 금액이었다(마 20:2). 따라서 한 사람이 한 달란트를 벌기 위해서는 6,000일을 일해야 한다.
쉬는 날을 제외하고 다른 비용도 다 무시하고 보통의 노동자가 1년 동안 300일을 일해서 1년에 300데나리온을 벌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보통의 노동자가 일을 해서 6,000데나리온인 한 달란트를 상환하기 위해서는 20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만 달란트는 평범한 노동자가 이십만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다시 말해 이 종은 그 빚을 결코 갚을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인은 종을 불쌍히 여겨 그 엄청난 빚을 기꺼이 탕감해 주었다.

(이어서) 그런데 그렇게 큰 빚을 탕감받은 종이 동료 중 한 명이 진 훨씬 작은 금액인 백 데나리온을 용서하지 않고 동료를 감옥에 가두자, 주인은 분노하여 자비로운 용서를 거두었다. 그 종은 주인의 사랑과 용서를 상실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결코 다함이 없지만, 사람은 끝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혜택을 거부하고 심지어 상실할 수도 있다.

<교훈>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결코 마르지 않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혜택을 거부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때 그것을 상실할 수도 있다.

<묵상>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용서해 주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으로부터 용서받기 위해 나는 어떤 대가를 치렀습니까?

<적용>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사탄의 지배를 택한 자들 – “사탄을 택한 자들은 그들이 선택한 주인, 즉 우리의 첫 조상을 타락하게 한 자의 정신을 드러낼 것이다. 선하심, 자비, 꾸준한 사랑을 소유하시고 그 마음이 항상 인간의 비애를 보시며 살인자를 그분의 자리에 받아주시는,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의 현현이신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을 거절함으로써 그 백성들은 제어하는 하나님의 영이 사라지고 인간이 크게 반역할 때에 인간성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할 것인지를 보여주었다”(가려 뽑은 기별 3, 416).

<기도> 제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고귀한 사랑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주의 사랑을 따르며 나타내기에 부족하지만, 저의 삶이 하나님 사랑을 담게 하시고 베푸시는 은혜를 세상에 나타낼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