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면서도 죄를 정당화하거나 불의에 눈 감지 않으신다. 대신 십자가를 통해 죄를 속함으로 공의를 보이시며 용서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악에 대해 진노하신다. 하나님은 한량없이 사랑이 많고 자비하시기에 성경의 한 선지자는 하나님이 너무 자비하다고 비난할 정도였다.
요나 4:1-4에 기록된 니느웨 사람들을 자비하게 용서하신 하나님에 대한 요나의 이야기와 반응을 생각해 보라. 이 구절은 요나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마 10:8)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요나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요나의 마음은 완악했다. 그는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한 짓 때문에 그들을 너무 미워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 베푸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교훈인가! 아무리 납득할 만한 상황이더라도 우리는 이와 같은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은 값없이 받은 은혜를 인정하고 그 은혜를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요나의 반응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그분의 성품에서 얼마나 중심이 되는지를 강조한다. 요나는 하나님의 자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욘 4:2)기 때문에 니느웨에 대한 심판을 거두실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과 나라를 공의롭고 자비롭게 대하신다.
“노하기를 더디하”심 또는 “오래 참으”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구절은 문자적으로는 ‘코가 길다’로 번역할 수 있다. 히브리 관용구에서 분노는 은유적으로 코와 연관되어 있는데, 사람이 화를 드러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코의 길이로 표현한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께 “코가 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분이 노하기를 더디하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화를 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하나님은 지극히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시며 은혜를 아낌없이 풍성하게 베푸시면서도 죄를 정당화하거나 불의에 눈 감지 않으신다. 그 대신, 십자가를 통해 죄와 악을 속하심으로 하나님은 공의롭게 행하시며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는 분이 되신다(롬 3:25, 26).
<교훈>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를 풍성하게 베풀면서도 죄를 정당화하거나 불의에 눈 감지 않으신다. 대신 십자가를 통해 죄를 속함으로 공의를 보이시며 용서하신다.
<묵상> 당신은 잘못을 저지른 이에게 은혜를 베풀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베푸신 풍성한 자비를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어떻게 하면 죄를 허용하거나, 학대나 억압을 방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비와 은혜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징벌과 자비가 완전히 부합되는 분 –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출 34:6, 7), … 하나님 정부의 권위와 능력은 반역을 진압하기 위하여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보응하는 징벌을 나타내는 모든 일도 자비롭고 오래 참고 긍휼이 많은 하나님의 품성에 완전히 부합될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541).
<기도> 종종 하나님께서 노하시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의 모습이 부끄럽고 죄가 많지만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죄를 용서하시는 십자가의 사랑에 의지합니다. 제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