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단 4:33).
변하는 사람
느부갓네살은 다니엘 2장에서 위대한 존재의 현존하심을 감지하고,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47절)라고 고백합니다. 그에게 선한 변화가 시작된 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는 다니엘 3장에서 금 신상을 세우며 신의 뜻을 자기 뜻에 맞춰 조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풀무불 속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있는 신적인 존재를 만납니다.
4장에서 다시 그는 꿈에 거룩한 순찰자를 만납니다. 다니엘의 경고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다가 일 년 후 그는 바벨론 도성을 내려다보며 자기 능력과 권세로 건설했다며 자기도취에 빠집니다. 그로 인해서 7년을 짐승의 모양으로 보낸 후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았고 곧 그의 총명이 돌아옵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을 높였을 때 낮아졌고, 자신이 낮아짐을 깨달았을 때 높임을 받았습니다. 엘렌 화잇은 이 이방인 왕이 여호와를 믿었고 구원의 대열에 참여했다고 진술합니다. 왕의 사례를 통해서 보면, 사람은 변합니다. 굴곡이 있을지라도 언제든지 하나님을 향하면 변화는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느부갓네살처럼 짐승이 되기도 했다가 정신이 돌아오기도 하며 노아, 욥, 다니엘처럼 의인으로 인정받기도 합니다. 사랑을 나누고 나누어도 무감각한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 눈길 하나에도 마음을 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악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날 문득 변화되어 눈앞에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변화되는가?
“목사님은 지금 예수님이 오시면 구원받을 자신이 있으신가요?”라는 한 청년의 질문이 생각납니다. 구원받을 자신이 없다고 말하면 믿음이 없다고 할 것이고, 자신이 있다고 말하면 교만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난처한 그 순간 주님이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면, 누가 구원을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면, 누가 구원에 대해 자신할 수 없겠습니까?”
사람은 변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신의 성품에까지 변화하고, 자신의 성취와 실패를 바라보면 짐승 그 아래까지 추락합니다. 바로 시선 하나의 차이가 영원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히 12:2) 오늘도 매 순간 바라보아야 합니다.
기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