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단 4:14, 15).
거룩한 순찰자
다니엘 4장에서는 땅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한 나무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나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한 순찰자가 있는데, 그분은 거룩한 분이라고 말합니다(13절). 사람들은 세상 최고 권력자와 세상을 동일시하고,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말에서 보듯이 인간과 세상을 동일시하며 자존성을 강조하지만, 성경은 온 세상이 거룩한 순찰자의 주권 아래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독립된 자아는 철학적인 개념에서만 존재할 뿐 인간의 실제 사회에서는 무너진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보다 더 자본주의 속성이 잘 드러나는 표현도 드물 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문화에서 인간의 가치는 이념적으로는 높임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은 돈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을 받곤 합니다. 그로 인해서 더 많은 것을 쟁취하고 소유하려는 경쟁 속에서 상처 입고 신음하는 모습이 우리 인간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런 인류에게서 우리는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거룩한 순찰자는 나무를 베고 가지를 자르고 잎사귀를 떨고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서 떠나게 하면서도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라고 말씀하십니다(14, 15절). 생명의 근원과 단절되어 있으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생명이 있다고 착각하는 인간에게 희망은, 그 나무를 자르고 베어내라고는 했지만, 그루터기는 남겨 놓으라고 하신 거룩한 존재에게 있습니다.
그분은 생명나무를 떠난 인간의 본래 모습을 우리가 직면하길 원하십니다. 왕의 꿈에 나타난 그분은 왕에게 그의 자기 본래 모습을 직시하라고 하시고, 그러면 은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왜곡된 모습에 계속 속고 산다면, 자신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거룩한 분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기도 하시지만, 당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줄을 우리가 알게 되면 다시 소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26절).
기도) 거룩한 순찰자 앞에서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을 깨달으며 하루를 시작하게 하소서.